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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원청 대표 책임 인정했으나 처벌은 솜방망이 ‘중대산업재해 1호 판결’ 등록일 2023.07.05 17:06
글쓴이 한길 조회 184
대상판결: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23. 4. 6. 선고 2022고단3254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산업재해치사) 등 사건

1. 사실관계

이 사건은 지난해 5월14일 경기도 고양시 소재 요양병원 증축공사에서 철골 및 데크플레이트 공사를 하도급받은 수급업체의 근로자가 건물 5층에서 고정앵글을 설치하기 위해 건물 6층에 설치된 윈치(반자동 도르래)를 이용해 건물 1층에서 6층까지 내부의 개구부를 통해 고정앵글을 인양하는 작업을 하던 중 위 고정앵글이 슬링밸트에서 이탈해 바닥으로 떨어지자 그 반동으로 함께 16.5미터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머리 부위 등 손상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문제가 된 작업은 중량물 취급 작업인데도 작업 지형 등에 대한 사전조사를 하지 않았고, 중량물 낙하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안전대책 등을 포함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업지휘자를 지정하고 그 계획에 따라 작업을 하도록 관리하지도 않았다.

근로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와 물체가 떨어질 위험이 있는 장소에서는 작업할 때 안전난간을 설치하고, 작업의 필요상 임시로 안전난간을 해체할 경우 추락방호망을 설치해야 한다. 설치가 곤란할 경우 근로자에게 안전대를 착용하도록 하고 안전대를 걸어 사용할 수 있는 부착설비를 설치하여야 하며, 작업 시작 전에 안전대 및 부속설비 이상 유무를 점검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런 안전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2. 판결 요지

재판부는 요양병원으로부터 건물 증축공사를 발주받은 원청업체(온유파트너스) 대표이사에게는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 원청업체 현장소장(안전보건총괄책임자) 및 하도급업체 현장소장(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게는 산업안전보건법위반 및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각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원청업체 안전관리자에게는 업무상과실치사죄로 벌금 500만원, 원청업체에 대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와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로 벌금 3천만원, 하도급업체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로 벌금 1천만원이 선고했다.

특히 주목을 끌었던 원청업체 대표이사의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책임과 관련하여, ‘법인이 제3자에게 도급을 준 경우, 원청업체 대표이사는 경영책임자로서 제3자의 종사자의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을 관한 조치를 해야 한다(중대재해처벌법 제5조, 제4조제1항제1호). 그런데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의 구체적인 조치로서 ①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에 따른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하여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법시행령 제4조제3호 위반). ②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각 사업장에서 해당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고(제4조제5호 위반), ③ 사업 또는 사업장에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작업중지, 근로자대피, 위험요인 제거 등 대응조치에 관한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공사현장에서 중량물을 인양하는 작업과 관련해 추락, 낙하 위험을 적절히 평가해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게 했으며, 그에 따른 안전대의 지급 및 부착설비가 설치되지 않았다. 또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음에도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 하여금 작업을 중지하거나 즉시 추락 위험을 제거하도록 하지 않았다. 이런 의무 위반으로 피해자가 추락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판시했다.

3. 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원청업체 대표이사가 경영책임자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하도급업체 근로자에게 발생한 중대산업재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진다는 점을 확인한 의의를 갖는다.

김용균 사건 판결선고에서 보듯이 중대재해처벌법이 있기 전까지는 원청업체 대표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위험에 대한 인지 가능성 여부를 요건으로 했다. 위험의 사전 인지를 부인하면 원청업체 대표를 처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체계에서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 안전담당자 중심으로 법적 의무를 부여하고 그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의 경영자는 실질적·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면서도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직접 안전보건확보의무를 부여하기 때문에 이제 경영책임자가 위험의 인지 여부가 아니라 자신의 의무 이행여부에 따라 처벌받게 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안전의무를 부여하고 위반시 책임을 묻기 위해 제정된 법이므로 이런 결과는 당연히 예견되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왜 필요한지를 다시 확인한 판결이다. 이제 경영책임자가 위험을 몰랐다거나 보고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는 말은 이제 과거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4. 판결의 한계

대상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이 왜 필요하였는지 그 의미를 확인해주는 것이지만 판결 내용을 검토해보면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다.

① 대상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음에도) 중대재해에 대한 종전의 양형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의무 위반으로 중대산업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법정형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에 대한 법원의 선고 형량이 지나치게 낮고 그로 인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만으로는 법의 억제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반성적 고려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고 법정 최저형이 정해진 것이다.

재판부도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업재해에 대해 최근 사업주 및 도급인에게 보다 무거운 사회·경제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에 관하여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고, 그에 따라 이 사건에 적용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도 했다”고 법 제정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상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이행이 거의 전무한 것으로 보이는 원청업체 경영책임자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는데 법정 하한형에 가깝다. 이러한 형량은 종전 산안법 체계에서 공장장 등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에게 선고한 양형 수준과 크게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약한 처벌은 검찰의 구형부터 비롯됐다. 검찰의 구형 자체가 경영책임자에게 2년을 구형하였고, 법원 또한 이보다 더 낮게 선고한 것이다.

법인에 대한 처벌에서도 원청업체에 3천만원, 하도급업체는 1천만원의 벌금형을 각각 선고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법인 처벌 상한이 10억원인 반면, 중대재해처벌법에서 법인 처벌 상한을 50억원으로 상향했어도 기업에 대한 종전의 낮은 벌금 선고형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검사가 원청업체 법인에 대해 1억6천만원을 구형했던 것과 비교해볼 때 법인에 대한 법원의 벌금 형량은 더욱 실망스럽다.

② 양형 참작 사유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는 피해자를 비롯한 건설근로자 사이에서 만연한 안전난간의 임의적 철거 등의 관행도 일부 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이는 바, 위와 같은 결과의 책임을 모두 피고인들에게만 돌리는 것은 다소 가혹한 측면이 있는 점”을 양형인자로 고려했다. 안전사고를 개인 부주의로 돌리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자고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진 점을 고려할 때 관행을 방치한 책임을 감경요소로 반영한 것은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 더욱이 그러나 윈치라는 기계를 사용해 중량물을 올리는 작업의 경우 해당 구간의 안전난간을 해체하는 것이 작업상 불가피한데 이를 임의적 철거 관행으로 판단한 것은 작업조건에 대한 사실오인의 가능성마저 있다.

③ 대상판결은 피고인들의 사과, 일정한 보상, 재발방지 다짐, 향후 계획, 그리고 피해자 유가족의 처벌불원 등을 양형에 유리한 요소로 보고 대폭 반영하였다. 사고 이후 사후 조치를 양형에 반영하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해도 반영 정도를 고려하면 대상판결은 사후조치를 이유로 행위 당시 위법의 중대성을 사실상 형해화 시켜버리는 판결 관행을 답습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5. 결론

결론적으로 대상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경영책임자에게 주어진 의무 위반에 따른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러나 검찰의 낮은 구형과 법원의 낮은 양형은 법 제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검찰은 대상판결 후 항소를 포기해 판결이 확정됐다. 대한민국을 안전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대재해를 대하는 사법당국의 인식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