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무죄’ 선고가 나왔다. 앞서 24건이 전부 유죄로 선고됐던 흐름이 깨졌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공사현장이 법 공포 후 3년간 시행이 유예됐던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된 부분이 결정적이었다. 반면 같은날 다른 법원에서는 중대재해 사건 재판 가운데 현존 최고형이 선고됐다. 베트남 이주노동자 2명이 무너진 콘크리트에 깔려 숨진 사고와 관련해 원청 대표가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작업지휘자 없이 화물차 기사 운전석 이탈
법원, 현장소장 안전조치의무 위반 혐의 인정
2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구지법 영덕지원 김선역 판사는 지난 16일 중대재해처벌법(산업재해치사)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경북 영덕군의 건설업체 ‘지디종합건설’ 대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함께 받은 법인은 벌금 1천만원을,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회사 현장소장 B씨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5번째 중대재해 사건 판결이다.
A씨는 2022년 7월4일 ‘영덕군 지방상수도 정비공사’가 진행 중이던 도로에서 지디종합건설 소속 화물차 운전기사 C(사망 당시 52세)씨가 담벼락과 화물차 사이에 끼어 숨진 사고와 관련해 재판에 넘겨졌다. C씨는 화물차로 폐콘크리트를 담는 작업을 하다가 휴식을 취하려 차에서 내렸다가 변을 당했다. 그는 주차브레이크가 풀려 미끄러진 화물차와 담벼락 사이에 끼어 다발성 늑골골절 등으로 숨졌다.
검찰 수사 결과 당시 현장에는 작업지휘자가 없었다. 현장소장 B씨는 운전 위치를 이탈하는 경우 갑작스러운 주행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협착 위험에 대한 작업계획서도 없었고 운전석 이탈 금지를 명시한 작업계획서도 지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A씨측은 혐의를 부인했다. C씨가 트럭을 담벼락에 주차한 후 고혈압으로 의식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고 늑골골절은 심폐소생술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현장소장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 위반 혐의는 전부 인정했다. 작업계획서에 ‘작업시 운전석 이탈금지’ 등이 기재됐는데도 사고현장에 작업지휘자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김 판사는 “작업지휘자가 있었다면 피해자가 운전석을 이탈하는 행위를 막았을 것이고, 만약 운전석을 이탈했더라도 담벼락에 끼었을 때 트럭을 이동시켜 피해자를 구조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 주장 50억원 불인정 ‘무죄’
법원 “공사금액 42억원, 계약금액 기준”
반면 대표 A씨는 중대재해처벌법 혐의를 벗었다. ‘공사금액’이 유무죄를 갈랐다. A씨측은 2020년 12월 한국수자원공사와 게약한 상수도 공사금액이 약 42억2천만원이라고 주장했다. A씨측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기소 당시(지난해 9월) 기준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이 아니다. 상시 근로자 50명 미만 또는 건설공사 50억원 미만 사업장은 법 공포 후 3년이 지난 시점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계약서 금액 이외에 자재비 등을 포함한 공사에 드는 총금액이 공사금액”이라며 52억4천여만원으로 해석했다.
법원은 공사금액이 50억원 미만인 42억2천만원으로 판단해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공사금액은 자재비를 제외한 ‘계약금액’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김 판사는 “영세사업자의 충분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준비기간을 위해 유예기간을 둔 입법취지를 고려하면 공사금액은 일차적으로 당사자 사이에 계약금액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검찰이 포함한 자재비 10억여원은 계산서에서만 확인될 뿐 공사서류에는 없다는 점이 근거가 됐다.
김 판사는 “공사금액은 발주자와 시공사 사이에 체결된 공사 계약금액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계약당사자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이 되는 공사인지 명확한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만약 ‘관급자재’를 사용한 수급인에도 법을 적용할 필요성이 있었다면 법 조항에 ‘공사금액 산정시 관급자재비를 포함한다’는 조항을 뒀어야 한다고 짚었다. 명문 규정이 없으므로 공사금액을 확대해 해석하면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A씨의 안전보건 확보의무에 대한 판단까지 나아가지 못하게 됐다. 검찰은 A씨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정한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4조3호)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기준 마련(4조5호) △안전보건 관련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 마련(4조7호) 조항 위반을 적용했다. 그런데 공사금액의 해석 차이로 인해 실질적으로 사업을 총괄하는 ‘경영책임자’ 책임은 묻지도 못한 셈이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베트남 노동자 2명 사망’ 원청 대표 징역 2년
‘반복 사고’ 결정적, 법원 “청소팀이 동바리 설치”
한편 다른 법원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최고형’이 선고됐다. 수원지법 평택지원 이선호 판사는 이날 소형건설사 ‘바론건설(옛 기성건설)’ 대표 D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지난 8월 징역 2년이 선고된 ‘삼강에스앤씨’ 사건과 같은 형량이다. ‘징역 2년’이 선고된 사례는 경남 양산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엠텍 대표(4월 선고)를 포함해도 3건에 그친다. 실형은 한국제강(징역 1년 확정)을 합하면 4건으로 늘어난다.
바론건설 하청업체 ‘대신이엔씨’ 현장소장은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원청 안전부장과 하청 작업팀장 각각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원청 법인에는 벌금 2억원이 선고됐다. 원청 대표는 지난 8월9일 경기 안성시 옥산동의 근린생활시설 신축 공사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이던 9층 바닥면이 8층으로 무너져 내리며 하청 소속 베트남 노동자 2명이 깔려 숨지고 5명이 다친 사고와 관련해 안전보건확보 의무 위반이 적용됐다.
실형이 선고된 배경에는 ‘반복된 사고’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공사현장은 올해 4월 고용노동부가 안전조치 의무 위반을 지적했는데도 6~7월 연속으로 노동자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 원청 대표는 2016·2017·2020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부과받은 바 있다. 이번 사고가 날 당시 공사현장에는 현장소장이 부재했다. 대신 옆 공사현장의 현장소장에게 지휘를 맡겼던 것으로 조사됐다.
법원은 특히 사고현장의 동바리 설치가 부실했던 점을 집중적으로 질타했다. 이 판사는 “콘크리트 타설은 붕괴 위험으로 인해 매우 위험한 공정”이라며 “그런데 동바리 설치 전 검토와 조립도 작성이 이뤄지지 않아 아무런 기준 없이 동바리가 설치됐고 그마저도 경험이 없는 청소팀에 의해 설치됐다”고 지적했다. 원청 대표에 관해서는 “안전의식 부재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사망한 피해자 유족들에게 금원을 지급하고 합의를 마쳤더라도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