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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숨쉬기도 힘든 직장 생활…나를 돌보기 위한 돌아보기 등록일 2024.01.17 09:39
글쓴이 한길 조회 178

근래에 만난 몇몇 후배가 어려움을 털어놓습니다. 회사에서 일에 지치고 사람에게 치여서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온갖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데 최근엔 인공지능(AI)이니 챗지피티(ChatGPT)니 하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등장하면서 더욱 압박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해하고 따라잡으려고 애쓰다 보면 더더욱 방전된 자기 자신을 보게 된다는 거지요.

한편으론, 조직 내에서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고 회사 안팎으로 경쟁은 더 심해지면서 초조하고 불안함이 더 커진다고 합니다. 그만두는 동료도 제법 있다고 합니다. 퇴사한 이들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고, 회사 안에서도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었는데, 퇴사 뒤 뚜렷하게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현실에서 탈진해서 살아남기 위해 그만둔다는 것이지요. 이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는 “나를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몸이든 마음이든 아픈 뒤에야 자신을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겁니다.

산소호흡 위한 ‘혼자만의 시간’

제가 현직에 있을 때, 대학에 있던 친구가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기업 임원은 날개 끝의 마지막 깃털이 잘려 나간 사람들 같다고요. 그래서 날아오르고 비행하는 데 원래 자기가 갖고 태어난 능력을 최대치까지 발휘하지 못하고 산다는 겁니다. 일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내 날개 끝 깃털은 내가 지킨다’고 마음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쉽나요.

은퇴하고 나니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은 깊은 숨을 쉬지 못하고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에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눈치 보고 고려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오너 회장부터 부회장, 사장, 임원, 그리고 동료와 후배까지,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내가 어떤 평가를 받는지 늘 신경을 곤두세우게 됩니다. 그뿐일까요. 회사 밖에서는 내가 어느 회사를 다닌다는 것이 나에게 라벨처럼 붙어서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회사에 혹시 누를 끼치게 되지나 않을까 늘 조심하고 삼가게 됩니다. 들숨, 날숨, 숨을 잘 쉬는 것이 생명 유지의 가장 기본적인 필수 사항인데, 깊은 숨을 쉬지 못하니 몸과 마음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거지요.

육체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산소호흡이 필수적입니다. 깊은 숨쉬기가 몸을 넘어 마음을 다스리는 데도 긴요하다는 것은 동서양의 수행 전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성령을 숨으로 표현합니다.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나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불교의 위파사나 수행에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우선 자신의 숨에 집중하도록 숨의 횟수를 세는 수식관을 합니다. 숨이 얕은 것은 호흡이 가쁘다는 것이고 수명이 짧다는 것이지요. 깊은 숨쉬기는 심장박동수를 낮춰 몸과 마음의 안정을 가져온다고 합니다. 이것은 영적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엘지(LG) 인화원장으로 일하던 당시, 저는 직원들이 일년에 며칠이라도 홀로 있으면서 제대로 긴 숨을 쉬면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갖길 바랐습니다. 인화원 시설 점검을 위해서 문을 닫는 연말 일주일을 활용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각자 홀로 지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신청하면 회사가 비용을 지원한 겁니다. 산사나 수도원에 머물러도 좋고, 자연 속에 들어가서 며칠 있다가 와도 좋다고 했습니다. 유일한 조건은 홀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첫해에는 단 한명이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신청자가 늘었습니다. 먼저 다녀온 사람들이 강력히 추천한 결과였습니다. 배우자·자녀가 있는 경우에 남편이든 아내든 홀로 여행하는 것이 쉽지 않던 터라, 회사 공식 프로그램이고 승진 조건이라고 배우자에게 말하도록 했습니다.

직원뿐 아니라 저도 연휴나 여름휴가 때 홀로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박2일 혹은 2박3일로 산을 오르거나 절이나 수도원에서 머물렀습니다. 특별한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외딴곳에 가서 조용히 앉아 명상을 배우거나, 산책을 하고 수도자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저에겐 이런 시간이 직장 내 스트레스 해독제였습니다.

불안 직면할 힘 없어 남 탓

하버드대학의 하워드 가드너 교수가 오래전 발표한 다중지능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지능은 기존의 지능지수(IQ) 테스트로 측정하는 수학, 언어능력 외에도 음악지능, 체육지능, 대인관계지능 등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중에서 특히 자기성찰지능에 관심이 생깁니다. 자기성찰능력이란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 집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외부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를 비추는 것이라서, 분석심리학에서 일종의 병리현상으로 보는 투사의 반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투사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모든 것을 상대방의 탓으로 넘깁니다. 자기 내면의 불안이나 열등감 등을 직면할 힘이 없어서 그냥 밖으로 떠넘겨버리는 것이지요. 불교에서는 자기성찰과 관련해서 회광반조(回光反照)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밖으로 향하는 의식을 되돌려서 자기 자신을 비춰 본다는 뜻입니다.

자기 돌봄은 자기 자신과 만나는 데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와 대면하고 자기성찰능력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자기 돌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홀로 고요히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필요로 하고 또 남들과의 관계에서 깊은 공감에 바탕한 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 역시 오래전부터 제 자신을 만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지만, 막상 그 작업을 시작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현실적으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니까요. 기존에 하던 일과 약속 등을 줄이고 내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생활 패턴을 좀 바꿔야 하지요.

토머스 키팅 신부의 말이 다시 생각납니다. “노화는 의식전환으로의 초대”라고 했지요. 그런데 이 의식전환은 어느 날 갑자기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은퇴 후 노년에 이르러 내면으로 성장하는 삶을 기대한다면 젊은 시절부터 ‘나는 누구인가’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품고, 때때로 고요한 시간을 보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회사 생활이 수도자들의 수행 생활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삶 자체가 수행이니까요.

저는 이제 은퇴하고 노화의 과정을 살고 있습니다. 현재 제가 ‘자기성찰적 삶’을 살고 있다고 단언하긴 어렵습니다. 그래도 노력 중입니다. 인생에서 자기 자신을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요?

삶을 배우는 사람

2016년 엘지(LG) 인화원장으로 퇴임한 뒤 삶의 방향을 ‘느리고 조용히 심심하게’로 바꿨다. 은퇴와 노화를 함께 겪으며, 그 안에서 성장하는 삶을 기록한다.

출처 :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11120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