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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SPC 빵 만들다 숨진 23살…“제 딸 박선빈, 기억해주세요” 등록일 2024.02.19 13:49
글쓴이 한길 조회 151

평택 SPL 끼임사 노동자 1주기
“우리 선빈이 때 바뀌었다면 없었을 재해 반복 선빈이의 죽음 잊지 않고 같은 일 더는 없도록”


박선빈. 한겨레는 1년 만에 그의 이름을 적는다. 이전까지 ‘에스피엘(SPL) 평택공장에서 일하다 식품 혼합기에 끼여 숨진 스물셋 노동자 ㄱ씨’로 불렀다. 선빈씨 어머니 전아무개(52)씨는 “선빈이의 죽음을 잊지 않고 같은 일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딸의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 10월15일은 선빈씨가 공장에서 목숨을 잃은 지 꼭 1년 되는 날이다.

전 국민을 아연하게 한 지난해 에스피씨(SPC) 계열 에스피엘 공장의 중대재해 1년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충남 천안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전씨는 딸에게 쓴 편지를 앞에 두고 고개를 떨궜다. 편지에는 “해답을 찾을 수 없어 그 고통과 슬픔이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구나”라고 적었다.

지난 8월 같은 에스피씨 계열 샤니 빵 공장의 죽음을 접한 뒤 반복되는 중대재해 앞에서 느낀 좌절감을 적은 문장이다.

일하다 목숨 잃는 노동자의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전씨는 “그날이 반복된다”고 했다. 그날, 2022년 10월15일 아침 6시18분. 야간(저녁 8시~아침 8시) 근무 중 고추냉이 소스 배합작업을 하던 선빈씨의 오른팔이 배합기계 회전축과 회전날 사이에 끼였다. 어머니 전씨가 소식을 들은 건 사고가 나고 한 시간쯤 지난 뒤였다.

“인사 사고가 나 회사로 와보셔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집에서 공장으로 가는 15분이 무척 길었다. 경찰은 “너무 참혹하니 현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왜 그때 그 말만 듣고 들어가 보지 못했는지, 그게 내가 너무너무 후회돼요.” 전씨가 말했다.

1년 전 선빈씨의 발인 날(10월20일) 전씨는 한겨레에 “(에스피씨에) 단지 바라는 건, 우리 딸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영인 에스피씨 회장은 이튿날 대국민 사과를 하며 중대재해 재발방지 약속과 함께 안전관리 강화에 1000억원 투자를 약속했지만, 전씨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선빈씨의 죽음 이후 열달 만인 지난 8월8일 같은 에스피씨 계열인 성남 샤니 제빵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반죽 볼 리프트와 분할기(반죽 기계) 사이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다시 선빈씨한테 중대재해가 닥친 그 날이 떠올랐다. “우리 선빈이 때 바꿨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잖아요. 말뿐이었습니다. 뭐 하나 바뀐 게 없어요.”

샤니 공장 사고 당시 리프트 기계에는 상승·하강 때 작동하는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고, 끼임을 감지하고 멈추는 안전 센서도 설치되지 않았다. 선빈씨가 끼인 식품 혼합기도 끼임을 감지하고 정지하는 등의 방호 장치가 없었다. 고작 10개월 시차를 두고 닮은 죽음이 반복됐다.

전씨는 딸의 죽음과 그 이후 반복된 중대재해를 겪으며 “기본적인 체계조차 잡혀 있지 않은” 기업의 민낯을 보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로 “회사는 직원을 사람이 아닌 기계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한겨레가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선빈씨 사고에 대한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재해조사 의견서’를 보면, 선빈씨가 끼인 기계는 위험성 평가에서 끼임 위험이 파악되고도 ‘미미한 위험’으로 평가돼 안전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선빈씨가 했던 소스 배합 작업에 대해선 위험성 평가도 이뤄지지 않았고 작업안전표준서 또한 없었다.

회사는 피로도가 크고 집중력이 떨어지기 쉬운 야간 맞교대 작업을 위험요인으로 파악하지 않았다. ‘사람의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놓쳐선 안 될 위험을 무더기로 간과한 셈이다. 에스피엘 공장에서는 최근 3년간 끼임 사고가 12건 발생했다.

경영 책임자에게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세우는 기본적인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처벌법’은 무력했다는 게 전씨 생각이다. 지난 8월 검찰은 강동석 에스피엘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지만, 허영인 에스피씨 그룹 회장은 기소하지 않았다.

유가족은 9월18일 허 회장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검찰에 항고했다. 항고장에는 “사업장을 실질적으로 지배, 운영, 관리하는 기업집단 에스피씨의 경영책임자(허 회장)를 중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처벌하지 않으면 기업문화를 개선할 수 없으며, 중대산업재해를 근절할 수 없다”고 적었다.

전씨는 “역시 우리처럼 힘없는 사람은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기지 못하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선빈씨 가족은 20년 동안 운영하던 인쇄소를 정리하고 오랫동안 살던 집을 떠나 이사했다. 전씨는 “우울증약 6알을 먹으며 그냥 살아 있다”고 했다.

기억과 자책이 뒤섞인 날들이 이어졌다. 전씨는 빵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선빈에게 에스피엘 취직을 권했던 일, 식품 대기업 ‘간판’을 믿고 취업을 축하한 일, 일하다 생채기 난 팔꿈치를 보고도 ‘괜찮다’는 선빈씨 말에 지나쳤던 일을 하나씩 되짚었다. 가족은 선빈씨의 제빵 책과 평소 좋아하던 가수 위너의 앨범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그나마 힘이 된 건 함께 분노하고 위로해준 시민들이다. “그래도 기댈 곳이 있구나 싶어서 고마웠습니다. 선빈이 같은 일이 다시 안 생기는 것, 그게 아직도 바람입니다. 다른 (중대재해를 겪은) 가족들이 홀로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지, 겪어보니 알겠습니다.”

지난해 3월 선빈씨는 이름을 혜연에서 선빈으로 개명했다. ‘선빈이라는 이름이 너무 좋아. 요즘 자꾸 그 이름이 눈에 들어오네’라며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선빈씨는 좋아하는 이름으로 7개월 불리고 세상을 떠났다. 전씨는 “가족처럼 평생 같은 아픔으로 기억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선빈이 이름을 부르고 잊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SPC 빵 만들다 숨진 23살…“제 딸 박선빈, 기억해주세요”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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