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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험을 드러내야 안전해진다, 현장 의견 청취가 출발점” 등록일 2023.07.11 10:51
글쓴이 한길 조회 191
정부는 2026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사망사고 만인율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담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다. 처벌과 규제만으로는 더 이상 산업재해를 줄일 수 없다는 평가와 함께 추가적인 산업안전보건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개편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은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중심으로 삼은 위험성평가다. 아주 새로운 제도는 아니다. 2013년 도입했으니 이미 10년째 시행 중이다. 그동안 위험성평가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해 왔다.

그런데 위험성평가를 중대재해 감축의 핵심 의제로 꺼내든 정부는 노사가 함께 사업장 위험요인을 파악하고 개선대책을 수립·이행하는 제도가 정착하면 재해감소로 이어지리라 기대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환영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매일노동뉴스>가 현장에서 작동 가능한 위험성평가 제도 개선방안을 살펴봤다. 안전보건공단과 함께하는 ‘중대재해 감축, 노사가 함께’ 캠페인으로 공동기획했다. <편집자>

“의견을 내면 받아들인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위험하다고 말해도 무시하면, 그 이후부터는 의견을 내지 않게 되지요.”(항공기 지상장비 부문 노동자 김문수씨)

“위험한 환경은 작업자가 제일 잘 압니다. 문서로 의견 내기 어렵다면 말로 하자고 합니다. 개별적으로 찾아가서도 의견을 묻고요. 그리고 반드시 피드백합니다.”(송기주 공항사업본부장)

스탭스(STAFFS) 공항사업본부 사업을 책임지는 송기주 본부장과 현장 노동자 김문수씨의 말이다. 현장 노동자가 위험한 작업 환경을 지목하면 사업주는 이를 수용해 노사가 함께 개선책을 찾는다. 위험성평가가 현장에서 작동하는 기본 원리가 두 사람 답변에 함축돼 있다.

근로자파견사업을 시작하며 출범한 스탭스는 2006년 항공사업에 진출해 서비스업·제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항공기 부품 배달과 저장 등 물류서비스, 항공기 연료보급 장비 등 갖가지 지상장비 정비, 항공기 엔진부품 세척 등 정비, 작업복 재봉·세탁업무도 한다. 대형 항공사 하청업체다. 서울 강서구 사업장은 일반서비스업으로, 엔진 정비 등이 이뤄지는 경기도 부천 사업장은 제조업으로 등록돼 있다. 송 본부장이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로 책임을 진다. 지난달 15일 현재 노동자 137명이 일하고 있다.

업무 특성 따라 위험성평가팀 운영
“현장 근로자가 말해야 인지 후 개선 가능”

지난달 30일 서울 강서구·경기도 부천의 스탭스 공항사업본부 사업장을 <매일노동뉴스>가 찾았다. 스탭스는 업무 특성에 따라 위험성평가를 4개 팀으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지상조업장비(GSE) 지원 △항공기 부품정비 △보급물류 지원 △엔진정비 지원 부문이다. 서울 강서구 사업장은 원청 항공사의 정비 현장을 함께 쓴다. 항공기를 견인할 때, 연료를 보급할 때 사용하는 지상조업 장비들을 점검하는 일이 여기서 이뤄진다. 짐이나 물 등 보급물품을 항공기로 이송하는 지상조업 업무도 맡는다. 해당 업무에서 중대재해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대한항공 자회사 한국공항에서는 지난해 4월 인천국제공항에서 항공기 견인차량(토잉카)을 정비하던 노동자 한 명이 바퀴에 머리가 끼이는 사고로 숨졌다. 같은해 12월에도 인천공항에서 항공기를 계류장으로 이동시키다가 토잉카 바퀴에 깔려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기도 했다.

스텝스 공항사업본부 위험성평가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직원의 참여”다. 4개 팀으로 위험성평가 조직을 운영하며 담당자와 참여자를 정해 뒀지만 형식일 뿐이다. 송 본부장은 “행정적인 일로만 접근하면 현장 근로자들이 위험요인에 대해 발제하지 않고, 그러면 위험이 드러나지 않고 잠재해 버린다”며 “(위험성평가)팀에 참여하지 않은 직원을 찾아다니면서 의견을 듣는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 써서 제출하라고 하면 참여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직접 의견 청취 방식으로 위험요인을 발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험성평가에 상금을 내건 것도 주목할 만하다. 팀별로 1명씩, 분기당 총 4명을 산업안전보건 모범사원으로 선정해 상금을 준다. 1년이면 모두 16명이다. 위험성평가 의견을 많이 냈거나, 획기적인 개선을 이끈 사람에게는 1년에 한 번 사장이 직접 포상한다. 개선 의견을 내는 것이 회사와 개인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라는 사실을 각인하는 효과를 기대한 회사 정책이다.

송 본부장은 “숨김없이 얘기하는 분위기다 보니 인사·노무 관련한 의견도 많이 나오는데, 그것도 안전보건과 전혀 관계없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직원들이 입을 닫지 않는 것”이라며 “위험요인을 드러내기 위해 뭐든지 얘기하면 들어주고, 최대한 개선 조치해 그 결과를 알려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작업 전 안전점검 회의 … 격식 따지지 않고 노동자 의견 청취

지난달 22일 개정된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고시)에 따라 앞으로 정기(1년 단위)·수시(설비·물질 신규 도입 또는 산재 발생기)평가는 상시평가로 갈음할 수 있다. 상시평가는 매일 작업 전 안전점검 회의(TBM·tool box meeting)로도 가능하다.

스탭스는 수시평가를 자주 진행한다고 볼 수 있다. 작업 전 안전점검 회의가 활성화돼 있다. 강서구 사업장에서 지상장비 점검을 맡은 노동자 A씨는 “평가 시기가 되면 전 직원에게 일제히 공지되고, 교육 참여를 독려하고 개선사항을 청취한다”며 “그런데 이보다는 그냥 직원들이 수시로 의견을 내는 형태가 일반화돼 있다”고 전했다. 다른 회사에 다니다 최근 스탭스로 옮겨온 그는 “관리자들이 우리 의견을 귀담아들어 주는 분위기, 사후 조치 결과까지도 자세히 알려주는 분위기가 다른 회사와 차별된다”고 말했다. 노후한 절단기 교체, 옅어진 항공기 유도선 페인트의 재도장 의견을 냈는데 수용된 사례를 들었다.

위험성평가나 안전점검 회의에서 나오는 의견이 매우 특이한 것은 아니다. “차폭등을 새로 설치하자” “경광등을 달자” “장비를 교체하자”는 것처럼 대부분 소소하다. 이런 개선점들이 모여 안전한 일터를 이룬다는 게 이 회사 안전보건 경영방침이다.

하청업체 권한 넘어서는 개선 의견은 어떻게?
“원청에 지속적 공문 전달해”

그렇다면 하청업체의 권한을 넘어서는 의견은 어떻게 처리될까. 최근 원청은 이 회사의 의견을 받아들여 현장 사무실 리모델링을 했다. 지상조업 노동자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혹한·혹서기를 대비한 온열·온랭 기기 설치, 지게차 등 장비 변경, 밝은 조명 아래 정비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공간을 개조했다. 송 본부장은 “돈이 많이 들어가거나 시간이 걸릴 것 같은 의견은 고객사(원청)에 전달한다”며 “개선책 의견을 남기면 고객사가 싫어하지 않을까도 우려했지만 자꾸 기록에 남겨야 고객사도 움직일 것이라는 점에서 공문 전달 등의 방법으로 지속해 의견을 낸다”고 설명했다.

노동자들은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듣는다”고 입을 모았다. 강서 사업장 지상장비 노동자 김문수씨는 “작업하면서 위험을 발견하면 바로바로 얘기하라고 세뇌당할 정도로 듣고 있다”고 웃음 지었다. 지상조업 노동자 김두환씨는 “위험하다 싶은 일은 ‘선보고 후조치’하게 돼 있다”며 “현장 노동자가 자의로 먼저 하지 못한다”고 업무작동 방식을 소개했다.

“안전점검 회의서 나온 의견 수용한 회사에 믿음 생겼다”

원청인 K항공 엔진 정비공장이 있는 스탭스 부천 사업장에서는 항공기 부품 세척 등 부품 정비작업, 엔진·타이어 등 항공기 부품 이송 업무가 이뤄진다. 지게차를 이용한 대형 부품 상하차 작업, 장거리 장시간 운전 등에서 위험이 적지 않게 도사리고 있다. 오염 정도에 따라 여러 단계에 걸쳐 이뤄지는 항공기 부품 세척 작업은 크레인을 이용한 부품 운반과 세척 과정에서의 화학물질(세척제) 노출 면에서 위험이 내포돼 있다. 부천공장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근로자위원인 이해승씨는 “세척반은 무거운 엔진을 이동시켜 작업을 하기에 위험하다”며 “아침 툴박스 회의에서 그날의 업무와 위험성 정도를 공유하고, 수집된 의견과 개선 결과는 매월 한 차례 문서로 정리한다”고 말했다. 안전점검 회의나 위험성평가 과정에서 나온 의견은 작업 환경을 바꾸고 있다. 지게차의 회전반경을 표시하는 레이저빔 설치, 운전자와 의사소통을 위한 무전기 설치 등의 아이디어가 위험성평가로 현실화했다. 항공기 부품을 이 공항에서 저 공항으로 실어 나르는 운송작업 운전업무는 2인1조가 원칙이다.

개정 위험성평가 지침에 따라 앞으로 위험성평가에서는 추정의 절차를 생략해도 된다. 위험성의 빈도와 강도를 계산해 위험 정도를 계량화하는 추정 과정이 어렵고 복잡해 위험성평가 제도 시행의 문턱을 높이고 있다는 정부 판단에 따라 개정됐다. 위험성 추정의 절차를 이 회사 관계자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2017년부터 위험성평가를 본격 운용하면서, 지난 7년 동안 적지 않은 시행착오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송 본부장은 “위험을 보는 눈과 능력을 키운다는 점, 관심을 가지면 위험이 보인다는 점 등에서는 계량화 과정이 나쁘지만은 않다”며 “다른 업체의 위험 정도를 살피고 파악하는 데도 계량화 수치가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부천 사업장의 보급물류팀장 B씨는 “주관적 요소에 따라 계량화 수치가 다를 수 있어서 위험성을 계량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2년 정도 하다 보니 좀 익숙해졌다”며 “그래서 저희는 현장 작업자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방식으로 운용해 왔다”고 설명했다. 위험성평가 등 안전보건활동 체계가 잘 갖춰진 사업장이라면 위험성 추정 절차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안전보건 집중한다는 소문 퍼지니 원청도 힘 실어줘”

하청업체의 깐깐한 안전보건 확보 노력을 원청사는 꺼리지 않을까. 송 본부장은 “위험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고객사에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현장이 안전해진다”며 “안전보건 활동에 집중하는 회사라는 소문이 나면서 고객사가 이제는 맞춤형 안전장비 주문생산 요구도 수용하는 등 힘을 실어준다”고 말했다. 올해 도급비에는 안전보건 위탁·교육비용을 포함했고, 안전장비 구입비용은 따로 정산해 주는 등 원하청 간 유기적인 협조가 본격화하고 있다.

현장 노동자들은 사업주 관심이 안전한 일터의 첫 번째 조건이라 느끼고 있었다. 노동자 C씨는 “현장에서 위험하다고 말해도 무시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다는 옆 회사 소식을 종종 전해 듣는다”며 “우리도 대표(본부장)가 바뀌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조업 노동자 김두환씨도 “본부장, 본부장의 지시를 받은 팀장이 수시로 개선 의견을 말하라고 독려한다”며 “다른 회사에서 볼 수 없는 우리 회사만의 고유한 분위기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가 안전보건 예방활동에 관심을 쏟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송 본부장은 “엔진 장비가 이송하다가 낙하했다고 가정한다면, 수십 톤에 달하는 장비 추락으로 인근 노동자는 중대재해를 입을 것이고 영업손실 또한 어마어마하게 나올 것”이라며 “안전은 직원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도, 회사 존속과 이윤적인 측면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스탭스 공항사업본부에서는 2019년 객실 재봉·세탁업무 노동자 한 명의 근골격계 질환이 산재로 인정받은 이후 지금까지 한 건의 산재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23.6.12시가  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