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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사에게도 안전보건교육을 등록일 2023.09.11 16:18
글쓴이 한길 조회 178
일하다 죽었다는 소식은 늘 안타깝다. 감전돼 죽거나, 깔려 죽거나, 물체에 맞아 죽거나, 떨어져 죽는 일들은 수도 없었다. 이번에는 한 젊은 교사가 자신의 일터, 교실에서 목숨을 끊었다. 교사의 죽음엔 일부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이 있었단다. 동료교사들은 망자가 근무했던 학교에 근조화환과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학교는 추모 행렬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아스팔트에서 교사의 안전과 노동권을 지켜 달라는 호소로 이어졌다.

교직에 종사하는 친구에게 여러 얘기를 들었다. 근무 외 시간이든, 주말이든 밤낮 가릴 것 없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이야기, 어떤 학부모가 자녀의 가방에 녹음기를 설치해 수업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한여름 괴담집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 학생지도 활동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예고 없이 교무실에 쳐들어와 소리부터 지르는 학부모까지. 친구들은 스트레스로 정신병원을 들락거렸다. 심지어 교직을 그만두기까지 했다.

엄연한 산재였다. 산재를 예방하고 교사의 노동권을 보호해야 할 교육당국, 교장과 교감은 책임을 방기했다. 당연히 교사는 자신의 노동권을 침해당하더라도, 악성 민원을 넘어 소송까지 가는 일부 학부모에게 대응할 수 없었다. 스트레스성 질환을 예방하는 건 고사하고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또한 악성민원인에게서 책임지고 보호해 줄 사람 또한 제대로 규정되지 않았기에 ‘나 홀로 버티기’가 유일한 대응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교사는 근로기준법을 온전히 적용받는 대상이 아니다. 법제처에서 2018년에 발행한 ‘선생님을 위한 법령집’을 참고하면 교사는 국가공무원법,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 교직원의 경우) 사립학교법 적용 대상이다. 사회적 인식으로도 ‘노동자이나 노동자가 아닌 신분’이다. ‘군사부일체‘로 대표되는 봉건사회부터 이어져 내려온 인식과, 사람을 사회 구성원으로 교육하기 위해 헌신해야 하는 사람으로만 받아들여질 뿐이다.

교육이라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사람을 상대하는 감정·돌봄 노동자라는 인식은 이에 비한다면 초라한 상황이다. 심지어 노동자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산업안전보건법령을 일부만 적용받고 있다. 당연히 직업병과 ‘안전’을 보장받는 데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각 사업장은 안전보건책임자와 안전보건관리자를 선임해 산재를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지만 교사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성하는 사업장이 아니다.

기업체에 고용되면 일용직인 경우 1시간, 정규직은 8시간의 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또한 분기마다 3시간 이상 정기 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안전보건교육으로 ‘산업보건 및 직업병 예방에 관한 사항’ ‘건강증진 및 질병 예방에 관한 사항’ ‘직무스트레스 예방 및 관리에 관한 사항’ ‘직장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 및 관리에 관한 사항’을 받아야 한다. 이미 어린이집·유치원 교사와 감정노동자에 해당하는 콜센터 직원, 돌봄노동자에 해당하는 간호사,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역시 안전보건체계 구축을 통해 안전보건책임자와 안전보건관리자를 선임해 안전보건교육을 받고 있다.

교사는 교육 대상이 아니다. 교육행위라는 노동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어떤 산업재해에 노출돼 있는지 모른다. 각 교육청과 학교를 중심으로, 현장에 안전보건책임자와 안전보건담당자를 선임해 안전보건체계를 구성·운영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학교장과 교육감을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 보건교사를 안전보건관리자로 선임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안전보건교육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정부와 국회에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범위를 확대하면 될 일이다. 이미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하더라도 ‘마법처럼’ 교사들이 악성 민원인에게서 해방되지 않는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의 사각지대 해소나 학교폭력 관련 업무 과잉 문제, 교사와 학부모·학생의 관계 재정립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교직에 종사하면서 어떤 질병에 노출됐고, 이 질병을 어떻게 예방·보호받을 수 있는지 알게 되는 것’과 ‘안전한 일터를 위해 책임 질 사람이 누구이며, 어떤 체계 속에서 보호받아야 하는지 아는 것’도 그만큼 필요한 문제다. 교사들이 자신의 노동을 침해받지 않고, 일을 사랑할 수 있는 ‘안전한 일터’에서 일했으면 한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