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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조업 ‘전산직 노동자’ 불법파견 최초 인정 등록일 2023.05.31 14:47
글쓴이 한길 조회 192

현대자동차의 자동차 연구·개발시설인 남양연구소의 전산장비 유지·보수 노동자들이 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았다. 제조업계의 전산장비 업무에서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법부는 그동안 연구·개발 직원만 원청의 정규직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020년 3월 완성차공장이 아닌 연구소의 도장 업무도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고 최초로 판결한 적 있다. 다른 제조업체의 비생산직 분야의 불법파견 인정 여부에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1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재판장 정현석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하청업체 소속 전산직 직원 A씨 등 11명이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현대차의 항소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A씨 등은 2001~2012년 사이 현대차와 위탁계약을 체결한 하청업체에 입사해 소속 업체를 바꿔 가며 연구소의 PC정비실에서 전산장비의 유지·보수와 자산관리, 보안업무를 담당해 왔다. 현대차는 연구직·일반직 직원들에게 1인당 PC 1대와 팀당 1대의 노트북 등 전산장비를 지급했다. 전산직 직원들은 연구소 내 PC와 노트북은 각 9천500여대와 4천800여대(2019년 기준)를 관리했다.

 

전산장비 지급·관리는 연구소의 연구개발총무팀이 총괄했는데, 사무자동화(OA) 업무표준과 관리규정을 만들어 관리했다. 직원들은 PC 등이 고장 나면 현대차의 업무용 그룹웨어인 ‘오토웨이’를 통해 장애를 신고했다. 상담원이 이를 접수해 업무서비스 지원 전산시스템에 장애신고를 등록했고, 전산직 직원들이 문자 메시지나 전산시스템을 통해 확인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했다. 유지·보수 결과 보고서를 작성해 총무팀에서 평가를 받았다. 보고서에는 보수 건수뿐만 아니라 2시간 이내 장애 처리율과 고객만족도가 포함됐다.

 

전산직 직원들은 전산장비 구매·지급 업무도 담당했다. 현대차가 자산관리의 일환으로 최신 전산장비를 주기적으로 구매하면 A씨 등은 현대차 직원의 지시에 따라 투자검토 보고서 등을 작성해 보고했다. 정규직 연구원들이 전산장비 대여를 요청하면 전산장비를 지급하고 대여 현황을 관리하기도 했다. 이 밖에 PC 보안관리도 수행했다. 그러자 A씨 등은 2년 넘게 현대차의 구체적인 지휘·감독 아래 근로를 제공했다며 현대차가 직접고용할 의무가 있다며 2020년 6월 소송을 냈다.

 

법원은 전산직 직원들이 현대차의 지휘·명령을 받아 업무를 수행했다며 A씨 등을 현대차 직원으로 인정하고, 정규직 기준으로 임금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전산장비 유지·보수 업무는 연구·개발 및 보안과 직접 연결돼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전산장비 관련 업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업무표준 외에 정규직 근로자들에 의한 구체적인 지시나 감독이 개입될 여지가 상당히 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전산시스템이 유지·보수 정보를 제공해 작업량과 순서를 결정했다고 판단했다. ‘신속한 처리’가 핵심인 유지·보수 업무 특성상 현대차가 위탁계약의 수준을 넘어 통제·관리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정규직 근로자들의 만족도 평가가 실시간 이뤄져 A씨 등으로서는 피고가 결정하는 작업순서와 시간에 구속돼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현대차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봤다. A씨 등이 연구소에 상주하며 동일한 업무시스템을 사용하며 상호 유기적인 업무를 수행한 점이 근거가 됐다. 총무팀의 사실상 하위부서로 일하며 정규직 업무와 명확히 구별되지 않았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위탁계약의 목적이 ‘노동력 제공’에 있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근로시간·휴가·근무태도 등에 대해 원청이 권한을 행사했다고 설명했다. 전산장비 유지·보수는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업무라 전문성과 기술력도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주목할 부분은 ‘도급’과 ‘근로자파견’을 재판부가 판단한 대목이다. 재판부는 “다수의 기업에서 전산장비 유지·보수 업무를 위탁(도급)계약을 통해 수행하도록 한다”며 “그러나 도급의 필요성이 있다는 점만으로 도급관계라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고, 사용의 실질이 도급관계에서 허용되는 방식과 정도를 넘어 근로자파견관계에 이르렀다면 도급인은 책임과 조치를 다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근로계약의 실질은 협력업체별로 다를 수 있어 전산장비 유지·보수 업무를 위탁했더라도 즉시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근로자파견관계를 주장하는 쪽의 증명 여부에 따라 판단이 갈린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법조계는 제조업체의 비생산 업무에 파견근로를 인정한 케이스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A씨 등을 대리한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법원이 제조업 사업장에서 생산공정이 아닌 업무더라도, 심지어 도급계약에 따르더라도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근로자파견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인정해 판단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노동현장에서 만연해 있는 도급계약을 통한 파견법 위반 행위가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 제7424호 2022년8월17일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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