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베이커리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 정아무개(26)씨가 주 80시간에 가까운 노동에 시달리다 지난 7월 숨졌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회사쪽 대응을 놓고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유족들은 정씨가 숨지기 일주일 전부터 주 80시간 노동에 시달렸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회사 쪽은 해당 기간 노동시간을 밝히지 않은 채 그가 입사한 이후 평균 주당 근로시간은 44시간이라고 맞서는 상황이다. 회사 쪽은 과로사로 산재를 신청하려는 유족에게 “양심껏 모범있게 행동하라”는 문자를 보내고, 사건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직원들 입단속에 나선 정황도 파악됐다.
28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지점에서 주임으로 일한 정아무개씨는 지난 7월16일 회사가 마련한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인천점 개점을 앞두고 있었다. 유족을 대리하는 김수현 공인노무사는 정씨의 카카오톡 대화기록 등으로 그가 숨지기 전 일주일 노동시간은 80시간에 이른다고 추정하고 있다.
정씨는 숨지기 전날인 7월15일엔 아침 8시58분에 출근해 밤 11시54분에 퇴근하며 ‘한 끼도 먹지 못했다’는 메시지를 지인에게 남겼다. 또한 7월11일엔 아침 7시41분에 출근해 새벽 3시11분에 퇴근하는 등 19시간 가까이 일한 것으로 추산된다는 것이 김 노무사의 주장이다. 또한 정씨가 숨지기 전 2∼12주까지는 법정 근로시간 상한인 주52시간을 넘겨 한주 평균 58시간을 일했다는 것이다.
김 노무사는 “(과로성 질환임을 입증하려면) 실제 고인이 얼마나 일했는지 일한 시간을 확인해야 하는데, 회사는 출퇴근 기록을 제공하지 않고 일한 날짜만 나와있는 근무일정표와 근로계약서만 보냈다”며 “이것만으로는 일한 시간을 확인할 수 없어 고인이 주변 사람들과 나눈 카카오톡 내용을 하나하나 받아 역으로 (노동시간을) 산출했다”고 말했다.
반면, 회사 쪽은 과로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을 운영하는 엘비엠(LBM)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매장 오픈을 앞두고 바쁜 상황에서 본사가 파악하고 있지 못한 연장근로가 있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주 80시간까지 연장근무가 이루어졌다는 유족들의 주장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2024년 5월 입사한 고인은 이후 약 13개월 동안 총 7회(합산 9시간)의 연장근로를 신청한 바 있으며, 당사가 파악한 고인의 근무기간 동안 평균 주당 근로시간은 44.1시간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유족이 주장하는 정씨가 숨지기 일주일 전과 앞선 12주의 평균 주당 노동시간이 아니라, 정씨가 근무한 기간 전체의 노동시간만 제시한 것이다.
산재보험법 시행령이나 고용노동부 고시 등 관련 법령은 과로성 질환을 판단할 때 두 가지를 본다. ‘근무시간’과 ‘업무부담 가중요인’이다. 업무시간의 경우, 발병 전 일주일 이내의 업무량과 이전 12주(발병 전 일주일 제외)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시간보다 30퍼센트 이상 늘었는지를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는다. 13개월치 평균을 제시한 회사의 설명과 산업재해 판단 기준은 거리가 있는 셈이다.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일했던 전직 직원들 증언도 회사 설명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전직 직원 ㄱ씨는 한겨레에 “노동자들이 매번 이러다 죽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져서 정말 안타깝다”며 “바빠서 식사를 거르고 일하는 직원이 허다하다. 1시간 주어지는 휴게시간에도 본사 관리자들이 업무 카톡을 보낸다”고 했다. 그는 이어 “근무시간이 끝난 뒤에도 추가 업무를 하고 퇴근하는 일이 많았다. 시간이 없어서 직원 스케쥴표 작성 등 서류 업무를 집에 와서 하기도 했다. 1시간도 못 잔 채 출근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 16시간씩 4일 이상 근무한 적
도 있다”고 덧붙였다.
고인 유족이 산재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보인 회사쪽 대응도 논란거리다. 고인의 직계 가족을 대신해 7월 말께 회사와 연락한 사촌 정상원 노무사는 “장례 기간엔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한 회사가 ‘산재 신청을 위해 실제 근무 기록이 필요하다’고 하니, 회사 임원이 ‘스케줄표 외 다른 근무기록은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당 임원이 한밤중에 ‘거짓 협조는 하지 않을 예정이니 양심껏, 모범있게 행동하길 바란다’는 문자를 보내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씨 유족은 지난 22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정씨 사건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뒤 회사 쪽이 직원 입단속에 나선 정황도 포착됐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이날 확보한 런던베이글뮤지엄 뮤지엄 인천점 아침조회 공지를 보면, 회사 쪽은 이날 직원들에게 “모든 인터뷰·촬영·녹취를 거절해 주고, 개인 에스엔에스(SNS)에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은 절대 게시하지 말아달라”고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혜경 의원은 “청년 직원이 목숨을 잃었는데 회사가 그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회사는 유족들에게 사과부터 하고 청년 노동자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노동부가 철저히 근로감독 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출처 : [단독] 런베뮤, 과로사 유족에 “양심껏 행동하라”…직원 입단속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