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제도는 1987년 국내에 도입돼 올해로 36년 차를 맞고 있다. 저출생 극복 방안의 하나로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사용자에 대한 사측의 불이익과 차별 사례가 잇따르며 온전한 권리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육아휴직은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효력이 발생하는 강행법규로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사업주는 휴직을 부여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처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선 사용 자체가 녹록지 않다. 이같은 문제를 ‘남성 육아휴직 참여 지원 조례안’을 발의한 박미정 광주시의원과 공동으로 기획해 현실과 대안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우산을 쓴 부자가 길을 지나가고 있다. 뉴스1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은 1년으로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근로자의 다수가 육아휴직 신청에 부담을 느끼거나, 신청하기 어려운 여건에 놓여 있어 정당한 권리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노동자는 육아휴직 사용시 고용 불안을 느끼고, 기업은 인력 부족 문제를 이야기 하고 가장 솔선수범을 보여야할 공직사회 역시 조직 눈치 보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저출생 시대에 접어든 만큼 출산 그 자체만으로 축하받아야 할 일이지만 정작 부모들은 마냥 행복하지만 않다. 연일 뉴스에서 ‘물가가 올랐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신혼부부들의 집 마련이 힘들다’라는 뉴스보다 정작 직장에서 축하를 받지 못한다는 현실이 슬픔으로 다가온다고 입을 모은다.
광주의 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30대 중반 남성 A 씨. 지난해 첫째 아이를 출산했다. 외벌이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첫 아이라는 소중함에 돈보다 아이와 아내와의 추억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 육아휴직을 신청하기 위해 회사 사장을 찾아갔으나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축하한다는 격려는커녕 “남자가 무슨 육아휴직이냐”는 핀잔을 들은 것. 우여곡절 회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다녀온 뒤 그의 자리는 없어졌다. 관리직이던 A 씨는 지방 현장직으로 인사 발령 났고, 이는 회사를 떠나라는 뜻을 간접적으로 받아들여 최근 사직서를 제출했다.
더 이상 육아가 여성의 몫이 아닌 남성도 함께 해야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지만, 위 사례처럼 남성은 여전히 육아휴직 사용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광주시 고용보험 가입자 남성 육아휴직급여 초회 수급자 현황을 살펴보면 현 실태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1~9월까지 광주시에서 남성육아휴직 급여를 받은 근로자는 단 392명에 불과하다. 월 평균 40명에 그치는 수치다.
“남자가 무슨 육아휴직이냐?” 인식 한계
여성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했다. 육아휴직에 들어가면서 승진에 누락되거나,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광주의 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30대 여성 B 씨는 올해도 승진 대상에서 누락됐다고 하소연했다. 육아휴직으로 1년을 쉬고 돌아온 뒤 계속 승진에서 밀리고 있다.
B 씨는 “동기들은 고사하고 남자 후배들에게도 진급에서 밀려났다”며 “실적으로만 놓고 봐도 큰 차이가 없는데 공백을 뒀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있는 것 같아서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을 겪었는데 둘째 아이는 절대 못낳을 것 같다”며 “아이를 낳은 것이 불이익으로 다가올 줄 상상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 6개월간 육아휴직을 사용했다가 불이익을 받았다는 신고가 총 220건이 접수됐다.
접수된 220건의 유형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신고된 내용은 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불리한 처우(47건)로 나타났고, 육아휴직 사용 방해나 승인 거부(36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의 사용방해나 승인거부(27건)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 220건일 뿐, 실제 불이익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이란 것이 광주여성가족재단의 설명이다.
광주여성가족재단 관계자는 “민간, 공직사회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하려다 불이익을 받은 사례들이 분명히 있을건데, 고용노동부에서 나온 통계는 말그대로 신고가 접수된 건에 대해서만 수면 위로 올라온다”며 “실제로는 후폭풍이 두려워 신고를 하지 못한 사례가 훨씬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근로자들이 육아휴직 사용에 고충을 토로하는 동안 기업들도 사정이 있다고 하소연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을 운영하는 소매업 사장 오배훈(42) 씨는 “대규모 사업장이면 몰라도 3~4명이서 근무하는 직장에서 1명이 빠져버리면 타격은 정말 심각하다”며 “아무리 일을 잘했던 직원이더라도 해고하고 다른 인력을 뽑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공무원 승진 밀려·민간은 해고 걱정
특히 육아휴직자에 대한 대체인력 지원금까지 지난해 정부가 폐지하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고 설명했다. 직원을 육아휴직 보낸 사업주가 대체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지급되는 대체인력 지원금은 사업주가 휴직자를 대신할 대체인력 채용 시 월 80만 원을 정부가 지원해 왔으나 지난해 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폐지됐다.
기존에는 사업주가 대체인력 지원금 80만 원과 육아휴직 등 부여지원금 30만 원을 합한 110만 원을 최대 1년간 매월 지급받아 132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 이후에는 매월 200만 원씩 지급되는 첫 3개월 이후에는 매월 30만 원씩 지원받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사업주가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은 최대 870만 원에 불과해 대체인력을 채용하는 대신 육아휴직자를 해고하고 신규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오 씨는 “전문인력을 필요로 하는 업종은 아니라지만 그동안 인력이 빠져나가도 대체인력 지원금으로 어떻게든 버텨보기도 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폐지했는데 사업하는 사람이 마냥 정으로만 운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은 민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공무원 C 씨는 “1년을 육아휴직 하면 근무성적(근평)에서 꼴찌가 된다. 6개월을 일하고 들어가면 그에 해당하는 ‘근평’은 살아있는 것인데 육아휴직을 갔다는 이유만으로 꼴등 점수를 준다”며 “일을 못하면 못하는 만큼만 주면 되는데 육아휴직을 간다는 이유만으로 근평에서 점수를 안주니 외부에서 보면 안정적이고,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공직에서도 그렇지 않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