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HD현대건설기계 등 5개 HD현대그룹 계열사 노동조합은 지난달 정년 연장 요구안을 그룹에 전달했다. 특히 올해는 과거보다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5개 계열사가 그룹과 공동으로 교섭하기로 했다. HD현대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조선업이 위기를 겪으면서 숙련공들이 현장을 떠났는데 지금 남아 있는 이들이라도 붙잡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인력난을 겪는 상황에서 대규모 신규 채용이 어렵다면 정년이라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노조도 사측에 정년을 지금보다 1년 연장한 61세로 해달라는 요구안을 제시했다. 이후 한화오션은 한화그룹 계열사로 편입됐지만, 노조의 정년 연장 요구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 철강업계에선 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 포스코노조가 정년을 연장하고 임금피크제를 완전 폐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삼성,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조선·철강·자동차·전자 등 제조업 분야 주요 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처럼 정년 연장 요구가 봇물을 이룬 것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는 고용 유지가 노조의 가장 큰 관심사였지만 엔데믹(풍토병화)으로 전환된 만큼 노조가 정년 연장을 내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람 수가 많은 베이비붐 세대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 기준 정년퇴직 나이는 1963년생인데, 이들은 우리나라 인구 구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베이비부머(1955~1974년생)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직장 내 비중이 높고, 노조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던 이가 적지 않다. 1963년생을 포함한 베이비부머의 이해관계가 노조 요구안에 담길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아울러 1963년생이나 1964년생은 만 63세가 돼야만 국민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하는 만큼 60세 정년 후부터 연금 수령 전까지 소득 단절을 우려해 정년 연장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대수명이 80세를 훌쩍 넘길 정도로 길어지면서 퇴직 이후에도 일을 하고 싶어 하는 희망자가 계속 늘고 있는 것도 노조가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이유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중 고령층(55~79세) 부가 조사에 따르면 고령자 중 장래 근로를 희망하는 사람 비중은 2013년 60.1%에서 지난해 68.5%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근로를 희망하는 연령도 71.5세에서 72.9세로 높아졌다. 근로를 희망하는 사유는 '생활비 보탬'(57.1%)이 가장 많았으나, '일하는 즐거움'(34.7%)을 꼽은 응답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으로선 인건비 부담과 신규 채용 위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19년을 기준으로 정년을 5년 연장하면 기업의 추가 고용 비용이 15조9000억원(국민연금 등 간접비용 포함)에 달할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임금 상승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정년 연장에 따른 비용 규모도 커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 인사관리 담당 임원은 "연공서열식 인사 체계를 해결하지 않고는 고용 연장을 논의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정년 60세 의무화' 후 중장년 인력 관리에 어려움을 겪은 점도 기업으로 하여금 추가 정년 연장을 꺼리게 만든다. 2021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300개 대·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한 결과 10곳 중 9곳이 '중장년 인력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했다. 기업이 꼽은 어려움은 '신규 채용 부담'(26.1%)과 '저성과자 증가'(24.3%) 등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응답 기업 중 71.7%가 정년 65세 연장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정년 연장은 올해 주요 기업 노사 협상에서 암초로 작용할 수 있으며, '노노갈등'을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 별도 노조를 설립할 정도로 재계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20·30대 MZ세대는 정년 연장 목소리를 높이는 50대 중후반 근로자들과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도 제기된다. 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MZ 구직자들이 수백대 1 경쟁률을 뚫고 취업하는 상황에서 기성 노조의 조건 없는 정년 연장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며 "당장은 사무직 MZ 노조보다는 대기업 일자리 구직자들의 반대가 먼저 표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21년 취업포털 사람인이 MZ 직장인 86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MZ 직장인은 노조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로 '조직문화 개선'(60.1%·복수응답)을 꼽았다. '정년 보장 등 고용안정성'을 택한 응답자는 26.9%에 불과했다. '공정한 성과 보상'과 '정년 보장'만 놓고 양자택일을 할 경우 10명 중 7명이 전자를 택했다.
* 노무법인 한길 블로그https://blog.naver.com/hanguilhrm/223263219715
* 출처: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business/10747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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