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갑질을 호소하며 경비노동자가 목숨을 끊은 서울 대치 선경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소장이 부당노동행위를 교사·방조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용역업체와 재하도급업체 간 계약서에는 경비노동자들의 단체행동시 계약해지하고, 입주민이 요구하면 경비노동자가 염색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헌법상 노동 3권과 용역업체의 경영권을 침해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3월14일 대치 선경아파트에서 일했던 70대 경비원은 관리소장의 갑질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료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관리소장의 책임을 물었던 이길재 경비대장이 같은달 31일자로 해고됐다. 이런 과정에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가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일반노조는 8일 선경아파트 경비업무 용역회사 ㈜상우시스템과 삼성에스원이 체결한 ‘아파트 시설경비서비스 하도급 계약서’를 공개했다. 선경아파트 경비업무는 삼성에스원에 하도급한 뒤 상우시스템에 재하도급했다. 계약서에는 “계약기간 중 협력사의 소속 인력들에 의한 태업 또는 파업행위가 발생했을 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특약사항에는 경비원 업무 태만으로 단지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즉시 7일 내 경비원을 교체하고, 단지에서 요청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경비원은 7일 내 상호협의 후 교체하는 것으로 돼 있다. 심지어 계약서에는 “단지에서 요청한 경비원 복장, 근태, 불필요 민원이 발생 안 되도록 성실하게 수행(머리염색 등)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있다. 노조에 따르면 관리소장은 실제 머리가 센 경비원에게 염색을 요구했다.
실제 관리사무소장과 입주자대표회의는 집회에 참가하는 경비원들에게 불이익 조치를 할 것을 용역업체에 여러 차례 요구했다. 입주자대표회장은 3월17일 업체에 공문을 보내 “이 경비대장을 근로계약이 종료되는 3월31일부로 교체하라”고 종용했다. 해고된 이 경비대장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관리사무소는 서울지노위에 보낸 사측 답변서에 이 경비원의 노조활동이 촬영된 CCTV 자료를 첨부해 ‘노동자 사찰’ 논란까지 일고 있다.
동료 죽음에 반발해 아파트 내 집회를 주도했던 홍아무개 경비원은 입주자대표회의 요구에 따라 다른 동으로 이동했다.
최종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노조법상 적법한 파업을 계약해지 사유로 삼는 것은 헌법상 노동 3권을 침해하고 용역업체로 하여금 부당노동행위를 교사·방조하게 하는 것”이라며 “개별 노동자들이 당사자가 아닌 계약이지만, 상우시스템 입장에서는 무효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장과 근태 개입, 7일 내 경비원 교체 조항에 관련해서는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 행위로서 경영 간섭”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사망한 경비원 박씨의 유족은 6월 근로복지공단 강남지사에 산재신청을 했다. 유족을 대리한 법무법인 ‘마중’은 재해자 의견서에서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는 3개월 초단기 근로계약에 따른 고용불안, 열악한 휴게공간에 더해 관리소장의 ‘직장내 갑질’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남윤희 기자 journalist@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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