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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설] 중대재해 1심 선고까지 2년, ‘지연된 정의’ 피해야 등록일 2024.11.06 10:07
글쓴이 한길 조회 225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의 1심 선고가 나오기까지 무려 2년 가까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에 필요한 인력과 역량 부족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처럼, 불법 행위를 제때 처벌하지 않는 것은 사회 정의를 훼손하는 것이다. 치열한 논쟁을 거쳐 어렵게 합의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지연된 정의’로 유명무실하게 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한겨레가 이 법이 시행된 2022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2년간 기소된 사건들의 공소장과 판결문을 분석해 보니, 중대재해 발생부터 1심 선고까지 평균 617.5일이 걸렸다. 이 중 수사에 걸리는 시간이 전체의 60%가 넘어 사건 처리 지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대재해 사건은 고용노동청이 1차 수사를 한 뒤 검찰에 넘기기 때문에 다른 사건에 견줘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1차 수사를 전담한 고용노동청의 수사 인력은 전국에 150명이 채 안 된다고 한다. 경찰의 대공 수사 인력이 700명이 넘고, 마약 수사 전담 인력도 300명이 넘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지난달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돼 사건도 그만큼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노동청의 수사 인력을 늘리지 않으면 중대재해 사건의 ‘수사 적체’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수사 적체는 ‘부실 수사’ 가능성을 키운다는 점에서 단순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현장에선 수사관이 업무 과중을 이유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기피하고, 회사에 필요한 자료를 임의제출 방식으로 확보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아무리 ‘임의수사’가 수사의 기본 원칙이라 하더라도, 중대재해 사건은 사고 초기에 강제수사를 통해 경영책임자의 지시 문건 등 증거를 확보하지 않으면 수사의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기업 오너가 처벌받을지도 모르는데, 순순히 불리한 증거를 내놓을 회사가 어디 있겠는가. 특히 대형 로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기업일수록 법적 책임을 피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수사와 재판을 통해 중대재해 처벌을 제대로 못 한다면 이를 선제적으로 막는 예방 감독도 어려워진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일하다 죽는 비극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만들어진 소중한 성과다. 정부는 이 법이 유명무실화되지 않도록 수사 인력 확충과 역량 강화에 힘써야 한다.

출 처 : https://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1300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