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학생(D-2)·결혼이민자 가족(F-1)을 돌봄인력으로 활용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4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법무부 소속 일부 출입국·외국인청(사무소)은 5월 초 국내 체류 외국인(D-2, F-1, F-3)을 상대로 ‘가사보조인 관련 간담회’를 열기 위해 참석 대상자를 모집하고 있다. 간담회의 목적은 “육아도우미 등 가사를 도와주는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제도에 대한 설명, 의견 듣기”다. 국내 체류 외국인에게 정책을 설명하고, 반응을 살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2차, 경제 분야)를 열고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에 이미 거주 중인 16만3천명의 외국인 유학생과 3만9천명의 결혼이민자 가족분들이 가사·육아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자”며 관계부처 대책 수립을 지시한 결과다. 값싼 외국인 돌봄 인력 도입으로 국내 돌봄 공백을 메우고 아이 낳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획은 실현될 수 있을까? 24일 <매일노동뉴스>가 정부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정책의 쟁점을 짚었다. ◆돌봄 공백 대안 된 외국인 노동자= 한국은 2023년 합계출산율 0.72명의 저출생 국가다. 과거 주로 자녀 양육·돌봄을 부담하던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돌봄공백은 커지고 있다. 대안으로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떠올랐다. 오랜 주장 중 하나인데,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월 100만원에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하면서 논의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현행법상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는 차별은 불가능하다. 정부와 서울시는 필리핀 노동자 100명을 정부 인증을 받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이 직접 고용하는 방식으로 도입하는 시범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가사근로자법에 따라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등의 적용을 받는다. 빠르면 올해 8월 입국한다. ◆외국인 유학생·결혼이민자 가족, 등장 배경은= 4일 윤석열 대통령 발언에서 짐작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가정 내 고용으로 (외국인 가사돌봄 노동자가) 최저임금 제한도 받지 않고, 수요 공급에 따라 유연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사사용인은 최저임금법과 근기법 적용이 제외되는데, 법 사각지대를 활용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말자는 주장이다. 국내에 이미 체류 중인 외국인이라 필리핀 가사노동자처럼 신규 가사돌봄 인력 도입과정에서 필요한 복잡한 절차도 생략할 수 있다. 외국에서 국내에 입국해, 바로 가사노동에 투입되는 이들보다 한국어 실력도 나을 가능성이 있다. 법 개정도 필요없다. 현재 외국인 유학생(D-2)은 일반 통역·번역·음식점 보조·일반 사무보조 등 특정 분야에 한해 시간제 취업이 가능하다. 영주권이 있는 결혼이민자 가족이 받는 방문동거(F-1) 비자를 받은 자는 원칙적으로 취업이 불가능하지만, 외국인 계절근로자 프로그램 기본계획에 따라 허가를 받으면 취업할 수 있다. 두 비자 모두 법무부 지침만 변경하면 가사돌봄 업종에 취업할 수 있다. ◆값싼 돌봄인력 활용 가능한가= 최저임금법 3조1항은 ‘가사사용인’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올해 최저임금 9천860원보다 적은 임금을 줘도 가사노동자를 고용한 이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뿐 아니라 내국인 가사노동자도 최저임금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내국인 가사돌봄인력의 시장가격은 노동시장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최저임금보다 높게 형성돼 있다. 구직사이트를 보면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 기준 산후도우미·육아도우미 일급은 10만원이 넘는다. 외국인 노동자가 내국인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 전제는 가사돌봄 노동을 하려는 외국인 노동자 공급이, 가사돌봄을 필요로 하는 내국인 수요보다 많을 경우다. 유학생은 현재도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는 서비스직에서 일을 구할 수 있는데, 최저임금을 밑도는 가사돌봄 노동에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중 한국어가 능숙한 경우 시간당 2만원의 임금을 받으며 일한다. 결혼이민자 가족은 유학생보다 취업 가능 업종이 적기 때문에 가사돌봄 인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다. 임금이 적더라도 합법적으로 일하길 원하는 경우 최저임금 미만 지급을 수용할 순 있다. 하지만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도 불법취업을 해 최저임금 이상을 주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데, 돌봄 일을 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결혼이민자 가족은 국내 체류 기간이 길어도,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경우가 드물어 돌봄인력이 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 대다수 의견이다. 한국 사람과 결혼한 가족의 자녀양육 지원을 목적으로 체류를 허가했으면서 이제 와서 다른 사람의 자녀를 돌보라고 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는 지적이다. ◆근기법 사각지대, 노동권 침해에 속수무책= 정부 정책의 근원적 문제점은 ‘외국인 노동권’에 관한 논의가 부재하단 것이다.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이 제외된다. 갑작스레 일을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아도, 업무 중 재해를 당해도, 노동자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특히 아이를 돌보는 ‘돌봄’은 예상치 못한 다양한 상황을 마주하는 일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가 다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고용주는 노동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법적 다툼은 오롯이 외국인 노동자 혼자 감당해야 한다. 고용주의 사적 공간 안에서 이뤄지는 노동의 특성상 인권침해가 발생해도 외국인 노동자 스스로 입증하긴 어려움이 따른다. 조혁진 연구위원은 “비공식 영역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근로자가 해결하거나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며 “가사근로자법은 가사서비스제공기관이 고충처리나 손해배상 등을 처리하도록 돼 있지만, 그런 보장이 없으면 노동자의 노동권 침해는 물론이고 소비자 피해에 대해서도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묻지마 외국인력 도입 문제점=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하다면 어느 영역에서든 도입할 수 있다. 다만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도입의 효과 등 장기적 관점에서 충분한 정책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결혼이민자로 20년여 동안 국내 체류 중인 ㄱ씨는 정부의 정책에 분통을 터뜨렸다. “과거에는 결혼이민자 양육지원을 위해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부모밖에 안 됐어요. 형제자매가 들어오면 한국에 들어와 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요. 그런데 이제는 시골에 농사를 짓는 사람이 필요하니 결혼이민자 형제자매, 부모를 불러요. 결혼이주여성도 한국에서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데, 이제는 결혼이민자 부모까지 활용해 노예처럼 일을 시키려 하는 것 같아 화가 나요.” 외국인 노동자 도입보다 우선할 것은 국내 외국인 노동자가 사람답게 사는지 돌보는 일이다. * 출처: 매일노동뉴스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224
* 노무법인 한길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nguilhrm/223641206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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