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인천국제공항에서 최근 5년간 발생한 산재 현황을 살펴보니 대부분의 산재가 자회사에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자회사 노동자들은 인력부족과 3조2교대로 인한 연속된 야간근무가 산재의 근본 원인이라며 충원과 교대제 개편을 촉구하고 있다.
모회사 인력 2배인데 산재는 11배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천국제공항공사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공사와 3개 자회사에서 승인된 산재는 총 142건으로 드러났다. 이 중 135건(95%)이 3개 자회사에서 발생했다. 각 자회사가 공사보다 인원이 많기 때문에 산재가 많을 수 있지만, 이를 감안해도 과도한 수준이다. 각사 경영공시를 기준으로 봤을 때 모회사인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직원은 올해 6월 기준 1천951명이다. 자회사인 인천공항시설관리는 지난해 12월 기준 3천683명, 인천국제공항보안은 올해 6월 기준 3천729명, 인천공항운영서비스는 올해 9월 기준 2천680명이다. 지난해 산재 현황을 살펴보면 모회사인 공사는 승인된 산재가 2건이었지만 인천공항시설관리는 22건, 인천공항서비스는 23건, 인천국제공항보안은 3건이었다. 시설관리 자회사는 모회사 인력의 2배 수준이었지만 산재는 자회사가 11배나 많았다.
산재뿐만이 아니었다. 정책연구소 이음과 공공운수노조가 지난 7월 인천국제공항공사 자회사 노동자(전기·탑승교·환경·보안) 6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9%가 불면증을, 76%가 수면박탈을, 70%가 낮에 졸음을 호소하는 수면장애 증상을 보였다. 우울이나 불안장애 같은 정신질환을 경험한 이도 17%나 됐다. 허리통증은 62%가 호소했다. 다리·무릎·발목 등의 통증은 60%가 경험했다. 이는 우리나라 취업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조사에서 드러난 유병률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고용노동부가 2020년 진행한 6차 근로환경조사에서 취업자·임금근로자의 5%가 불안감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허리통증을 경험한 이는 26%, 다리·무릎·발목 통증은 15%의 응답자가 경험했다. 공사 자회사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나 업무상 질병 경험이 우리나라 취업자 평균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편집 김효정 기자정원 대비 3~10% 언제나 공석
노동자들은 산재나 질병의 원인이 인력부족과 교대제로 인한 연속된 야간근무에서 비롯한다고 지적한다. 3개 자회사 노동자들은 모두 이틀 연속 야간근무를 하는 3조2교대 체제에서 일하고 있다.
야간근로와 노동자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한 연구는 국내외에서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마련한 근로자 건강지단 실무지침에서도 야간작업의 유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야간근무를 하게 되면 작업 중 사고 발생 위험은 30.4% 증가한다. 야간작업과 고혈압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일관된 연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우울증과 수면장애, 위장장애, 유방암 등의 발생도 야간근무와 높은 관계가 있다. 노동부는 건강관리를 위해 “연속 야간근무를 최소화하고 영구적인 야간근무는 없애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인임 정책연구소 이음 이사장은 지난 7월 공항 자회사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설문조사를 바탕으로 “2인1조 팀 작업이 직군별로 30~40%가량 이뤄지지 않았고 47%의 응답자가 업무량이 벅차다는 응답을 보였다”며 “모든 직군의 노동자가 인력부족 때문에 안전이나 고객서비스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 이사장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3조2교대 즉 연속된 야간근무를 하고 있어 수면장애나 업무 중 불안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4조2교대 도입을 위한 인력설계도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인력부족 문제는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가 수년 전부터 제기해 왔다. 높은 노동강도에 비해 처우가 좋지 않아 3개 자회사 모두 정원대비 현원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됐다. 지부가 경영공시를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3개 자회사 부족 인력은 2020년 340명, 2021년 725명, 2022년 929명, 지난해 547명, 올해 6월 359명에 이른다.
지부는 2022년 6월에도 코로나 시기인 2020년 5월 대비 여객 수가 577% 증가했지만 인력은 정원대비 10% 부족하다며 인력충원을 촉구한 바 있다. 지부는 지난해 5월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전년 대비 10배 늘어난 여객수를 대비하기 위해 신규 채용과 처우 개선을 주문했다. 올해는 12월 완료될 인천국제공항 4단계 공사를 앞두고 인력충원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인천국제공항은 개항 전인 1992년부터 30여년간 4단계에 걸친 확장공사를 추진해 왔다. 올해 말 공사가 끝나면 공항은 1억600만명의 여객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여객과 화물터미널 및 계류장은 2001년 개항 때보다 두 배 이상 확장되고 운항횟수와 화물처리 능력도 증가한다. 지부는 자체 조사한 결과 4단계 준공에 따라 3개 자회사에서 추가로 필요한 인력이 1천339명이라고 밝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7·8월 3개 자회사 역시 모회사인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이와 비슷한 규모인 1천180명의 증원을 요구하는 계약변경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회사별로는 인천국제공항보안 487명, 인천공항운영서비스 302명, 인천공항시설관리 391명이다.
그런데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자회사와 자회사 노동자의 요구에도 인력 감축을 검토해 온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공사가 2022년 한국생산성본부에 발주한 연구용역에는 2025년까지 3개 자회사 정원을 852명 줄이는 ‘혁신안’이 포함돼 있다. 4단계 준공에 따라 증원해야 하는 인원을 고려하면서도 기존 노동자들의 출근 일수를 늘리고 자동화를 도입해 정원을 파격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제안한 것이다. 맹성규 의원에 따르면 공사는 이 연구용역을 바탕으로 실제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자회사 인력 259명을 감축하려는 계획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자회사에 입사한 직원이 2년 내 퇴직하는 비율은 평균 25%다. 열악한 처우와 야간근무·교대제로 인한 퇴사가 이어지면서 인력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 편집 김효정 기자4조2교대 개편 약속은 ‘휴지통’으로
무엇보다 4조2교대로의 교대제 개편은 공사와 자회사 노동자 간 ‘약속’이다. 야간근무가 이틀 연속 발생하는 현행 3조2교대에서 4조2교대로 전환하려면 1개 근무조가 늘어나기에 인력충원은 필수적이다. 야간근무의 유해성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로 수년 전부터 공사 자회사 노사는 교대제 개편에 합의해 왔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공언하며 취임 후 첫 번째로 찾은 사업장은 인천국제공항이었다. 이후 공사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노·사·전문가협의회를 3차례에 걸쳐 열었다. 2017년 12월 맺어진 1기 노·사·전문가협의회 합의서에는 “별도회사 직접고용 노동자의 전환 이후 근로조건과 고용안정 수준이 공사 직접고용 노동자의 경우보다 낮지 않도록 한다”는 문구가 기재돼 있다. 공사 자회사와 모회사 노동자 간 노동조건에 차별을 두지 않겠다는 의미다. 2020년 2월 도출한 3기 노·사·전문가협의회 합의문에는 좀 더 구체적인 교대제 개편 합의사항이 포함돼 있다. 합의문에는 “정규직 전환 완료 이후 조속한 시일 내 연구용역을 착수해 4조2교대 개선방안을 검토하고 공항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단계적으로 적용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러나 2년이 지나도록 합의가 이행되지 않자 2022년 인천공항지역지부는 파업했고 그해 11월과 12월 3개 자회사와 교대제 개편에 합의한다. 인천공항시설관리와는 4단계 준공 전에 4조2교대 시행을 합의했다. 인천공항운영서비스와는 노사협의체 구성을, 인천국제공항보안과는 4단계 완공까지 교대제 전환을 완료하기로 합의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교대제 개편을 위한 인력충원, 4단계 준공을 앞둔 인력충원 모두 모-자회사가 맺는 용역계약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 22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의원들은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향해 “충원 대책을 보고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이 사장은 “자회사 인력은 자회사의 책임”이라며 “자회사는 인력이 부족하면 스스로 충원해야 한다”고 답했다. 사회적 책임을 지적하고 자회사의 높은 이윤율에도 인력 충원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의원들의 질책이 이어지자 그제서야, 이 사장은 “자회사와 협력해 효율적인 인력 운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자회사 노동자들은 지난달 4조2교대 전환을 촉구하며 예고한 3차 파업을 보류했다. 앞서 7월과 8월에도 하루씩 파업에 나선 터였다.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추석을 앞두고 6일 동안 파업을 진행하려 했으나 3개 자회사가 모회사에 인력 충원을 요구하겠다고 나서면서 보류했다. 파업 불씨는 남았다. 4단계 준공을 앞둔 지금, 공사는 또다시 헛공약에 머무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