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선이 끝나고 숨 돌릴 틈 없이 출범한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가 국정과제를 고르는 중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없는 상황에서 국정과제 밑그림은 대선공약이 될 여지가 크다. 이재명 대통령의 노동공약에는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 정년연장 등 그간 노동계가 오래 요구해 왔던 굵직한 법·제도 개선 과제가 담겼다.
이 공약이 채택될 때까지 노동계와 각계 전문가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노동분야 전문가는 자문·고문단에 합류해 공약을 제시·검토하는 등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전문가가 한국사회 노동문제 해결책이라 제시했지만 공약에는 미진하게 반영됐거나 빠진 것도 많다. ‘이겨야 했던’ 대선이 끝난 만큼 산업안전보건분야, 성평등 일터 과제는 국정과제와 향후 국정운영에서 주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산업안전, ‘총대’ 메고 책임져야
매일 일터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4년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하루 평균 2.3명이 산재로 사망했다. 산재로 인정되지 않은 사망자는 더 많다. 매년 국정감사에서는 산재사고 다발 사업장 대표를 불러 질타하지만 이마저도 매해 반복될 뿐이다. 산재사고를 멈춰야 한다는 보도도 함께 반복된다.
대안으로 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산업안전보건청으로 승격하는 것이 거론돼 왔다. 본부 담당 과장·국장의 잦은 인사이동 등으로 전문성을 쌓을 시간이 없기 때문에 안전한 일터를 전담할 독립된 인력·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요구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청은 민주당 대선공약에서 빠졌다. 정부 내 노동안전보건체계를 통합·운영하겠다는 공약으로 갈음했다.
전문가들의 요구를 민주당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공약을 검토했던 정진주 사회건강연구소장은 “민주당의 산업안전 공약 이름이 ‘일하거나 다치거나 죽지 않게, 일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노동안전보건체계 구축’인데, 지금으로는 어떤 체계를 만들려고 하는지 모호해 공약이 바라는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 같다”며 “그동안 산재 예방 시스템이 과연 올바른 방법인지에 대한 점검이 이제까지 한국에서 된 적이 없고, 아무도 아직까지 총대를 메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재명 정부 산업안전 ‘열린 결말’ “채용·배치전환·교육훈련 별도로 둬야”
공약 이름과 내용이 맞지 않는 건 원·하청 통합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도 마찬가지다. 이 공약에 민주당은 ‘후진적 산재예방시스템 전면 개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업 안전보건공시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인데, 매년 산재발생현황과 재발방지대책, 이행계획 등을 공개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이다. 안전보건공시 뒤 처벌 등 원청에 책임을 묻는 사후대책이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새로운 공시제를 만들거나 기존 제도를 조금씩 손보는 방식만으로는 반복되는 죽음을 막을 수 없어, 민주당이 말하는 노동안전보건체계의 형태와 내용이 중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정부 내 노동안전보건체계를 통합·운영하겠다는 말을 달리 해석하면 ‘열린 결말’이 된다. 앞으로의 방향 설정이 주요하다. 일부 전문가들과 국정기획위가 ‘엔딩 이후’를 고민한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산업안전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과 경험이 확보되는 게 핵심이기 때문에 채용부터 배치전환, 교육훈련, 승진에 이르기까지 별도의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며 “이것이 확보된다면 효과적인 산재예방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봤다.
공약 전반에 성평등 관점 미진
상대적으로 ‘마이너’ 취급을 받으며 소외된 전문가의 조언도 있다. 노동공약에 성평등 관점이 미진하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어떤 공약들은 성평등 관점 없이 추구했을 때 오히려 성불평등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며 예시로 노동자대표위원회 상설 제도화와 정부위원회 노동자 참여 보장 등을 들었다.
민주당은 노동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노동자대표의 선출·임기·역할·법적 보호 등에 대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또 각종 고용·노동정책을 수립하는 정부위원회에 노·사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고용정책심의위원회, 고용보험위원회, 고용보험심사위원회, 탄소중립위원회 등이 예시로 언급됐다.
이 위원회 구성에 성별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게 신 교수의 의견이다. 양성평등기본법은 국가·지자체가 위원회를 구성할 때 위촉직 위원의 경우 특정 성별이 위원 수의 10분의 6을 초과하지 말도록 규정하는데, 이 조항을 준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대선 과정에서 이 같은 주장을 민주당에 전했지만 ‘나중’으로 밀렸다.
‘공시’만으로는 안 돼, 실효성 강구해야
이 대통령이 ‘여성차별 없는 일터를 만들겠다’라는 제목으로 낸 공약 중 첫 번째가 고용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이다. 이 공약은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한 지난달 12일 민주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에도 포함됐다.
다만 ‘고용평등’이라는 표현에 대한 우려가 있다. 신 교수는 “성평등 공시제라 하지 않고 고용평등이라고 했을 때 고용형태 등 성평등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지표들이 들어갈 수 있어 취지가 흐려질까 걱정”이라며 “공시 후 실질적 개선을 위해 노동부와 여성가족부가 참여하는 성별임금격차위원회를 만들고 공시에 대한 권고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공시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라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제도만 많아지고 실효성은 하나도 없는 노동정책들이 한국에는 너무 많다. 공시는 하면 당연히 좋지만 제재와 인센티브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우리가 고용형태공시제처럼 공시제를 안 해본 것도 아닌데 왜 하나도 바뀐 것이 없이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는지를 앞으로 일을 하실 장관이나 부처가 좀 깊이 고민해 보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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