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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경포럼] 일하고 싶은 아버지, 취업하고 싶은 아들 등록일 2025.06.11 15:23
글쓴이 한길 조회 318
정년이 가까워진 지인들과 얘기하다 보면 고용에 관한 의견이 매우 '모순적'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자식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를 간절히 바라는 동시에, 부모인 자신도 정년이 늘어나 오래 직장에 다니고 싶어 한다. 일자리가 무한 팽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우리는 몇 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 '100세 시대'인 지금 60세는 신체적·지적 능력 모두에서 은퇴하기에 이르다는 게 사회적 공감대다. 법적 정년 60세와 국민연금 수급까지 수년간 소득이 끊기는 '소득 크레바스' 때문에 불안감을 갖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해법으로 '정년 연장'이 자주 거론된다. 더불어민주당도 대선을 앞두고 '정년 연장'을 띄웠다.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올해 11월까지 입법을 마무리하겠다며 속도를 내고 있다. 노동계의 오랜 요구인 '65세 정년'에 화답하고 나선 것인데, 정책이라기보다 정치적 계산이 엿보인다.

고령자들은 갈수록 오래 일하기를 희망한다. 통계청이 지난해 55~79세를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일하기를 원하는 고령자 비율은 69.4%, 은퇴 희망 나이는 평균 73.3세로 나타났다. 하지만 노동시장이 한정된 구조에서 기존 세대가 정년 연장을 고집할수록 청년 세대의 진입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청년 취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부모와 자식 세대 간 일자리 전쟁이 심화될 수 있다. 특히 직무·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지 않고 현행 호봉제에서 정년을 연장할 경우 기업들은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 또한 정년 연장은 대기업 근로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고,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악화시킬 공산도 크다. 단순한 '정년 연장'이 아닌 '고용 연장'이라는 더 유연한 접근법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사례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일본은 65세, 길게는 70세까지 일할 수 있다. 1998년 60세 정년을 의무화한 이후 30년에 걸쳐 '계속근로'를 정착시켰기 때문이다. 법으로 정년을 늘리는 대신 고령자고용안정법으로 65세까지 '고용 확보 조치' 의무를 부여하고, 구체적인 방법은 기업이 자율로 정년 연장과 정년 폐지, 계속고용(퇴직 후 재고용)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2021년부터는 법을 개정해 기업에 70세까지 취업 기회 제공을 권고하고 있다. 그 결과 계속고용을 선택한 기업이 70%에 육박했다. 계속고용은 계약직이나 시간제 근무 등으로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 기업이 부담을 덜 수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지난해부터 65세 이상 직원을 재고용해 70세까지 일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도 정년 연장에만 집착해선 안 된다. 정년 연장은 분명 고령자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청년 고용을 잠식해 세대 공존에 치명적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할 경우 청년층 취업자 수가 약 20만명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60세 이후에도 일하고 싶은 이들에게 다양한 일자리 선택지를 제공하고, 그들이 쌓은 경험을 사회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고용'의 핵심이다. 기업이 자율로 고용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도입한 '정년퇴직 후 2년 재고용'이 좋은 사례다. 다만 계속고용이 대기업 단위에 머물지 않고 중소기업으로까지 확산되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이제 고용에 관한 논의도 '정년이 몇 살인가'가 아니라 '몇 살까지 어떻게 일할 수 있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고령화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부모·자식 간 일자리 상생을 위한 현실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 정치공학이나 포퓰리즘이 낄 자리는 없다.


[심윤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