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료품 제조업 종업원 규모가 13년 만에 감소 전환했다. 식품산업은 제조업 고용위기의 ‘구원투수’로 평가받을 만큼 일자리 창출력이 높았다. 그러나 최근 식품(식료품+음료품) 제조업의 중장기적인 고용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식품시장 내수 부진이 지속된 가운데 식품사들의 생산설비 투자 무게 중심이 해외로 기울면서다.
고용, 금융위기 이후 ‘첫 감소’
국내 식료품 제조업 고용이 13년 만에 감소로 돌아섰다. 6일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2023년 식료품 제조업 종사자는 37만2천820명으로 전년(37만8천36명) 대비 1.37% 줄었다. 전년 대비 감소한 것은 2010년 이후 처음이다.
식품제조업은 제조업 중에서도 고용창출력이 높다고 평가받아 왔다. 반도체·자동차 산업 같은 자본집약적 산업과 달리 저숙련 노동자 중심 산업이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식품산업 구조 및 변화 분석’에 따르면 전체 제조업 고용시장은 2015년부터 성장세가 둔화한 반면 식품제조업은 성장 추세를 이어 왔다. 2004~2010년은 카드대란과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고용이 감소했지만, 이는 전 산업군이 동일한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그러나 최근 식품산업의 구조적 변화가 관측되기 시작하면서 고용 증가세가 둔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요 대기업 식품사들이 해외 생산설비 투자를 확대하면서다. 기업 투자가 해외로 집중되면 국내 투자는 감소하기 마련이다. 또 대규모 인력 확대보다 고효율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는 점도 국내 고용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식품제조업 무게 중심 해외로
국내 주요 식품사들은 최근 해외공장 신축과 설비 증설을 위해 수천억원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약 2천억원을 투자해 2027년까지 중국에 첫 해외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중국 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현지 생산을 일부 해 왔지만 직접 공장 설립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해외 생산시설이 없는 삼양식품은 그동안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을 해외에 수출해 왔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 중 직수출 비중은 94%에 달했다. 그러나 최근 라면 중심으로 해외 수요가 급증하자 현지 생산을 통해 원가 절감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CJ제일제당도 해외 생산 역량을 더 강화하고 있다. 이 회사는 1천억원을 투자해 헝가리 두나버르사니에 공장을 신설하고 2026년 하반기부터 만두를 생산·판매할 계획이다. 자회사 슈완스는 7천억원을 투입해 미국 사우스타코타주 수폴스에 2027년을 목표로 대규모 공장을 설립한다. CJ제일제당의 해외 생산시설은 이미 국내를 넘어섰다. CJ제일제당의 해외 식품 생산사업장은 지난해 3분기 기준 △미국 19개 △중국 4개 △아시아 11개 △유럽 3개 등 37개로 국내(24개) 보다 많다.
풀무원·오뚜기·SPC그룹도 미국 현지 생산 거점을 넓히고 있다. 풀무원은 2023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 풀러튼·길로이 공장 증설에 이어, 지난해 상반기 매사추세츠 두부 생산기지 공장도 증설했다. SPC그룹은 지난달 말레이시아 조호르 공장을 완공하고, 2027년까지 미국 텍사스 공장을 추가할 계획이다. 오뚜기도 2023년 하반기부터 미국 생산법인을 신설했고, 현지 생산기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국내 공장 신축에 나선 업체는 사실상 오리온이 유일하다. 오리온은 올해 상반기 충북 진천에 생산·포장·물류 통합센터를 착공한다. 그러나 이 회사의 생산설비 무게 중심은 이미 해외로 기울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오리온의 중국(랑팡·상하이·광저우·선양) 현지 음식료품제조 규모는 11만4천181톤으로, 국내(7만7천303톤) 보다 47.71% 많았다. 오리온은 연내 베트남 현지 공장을 두 곳 추가하고, 러시아 트베리 신공장 생산동을 신축할 계획이다.
내수 부진에 원가 부담 생산 거점 이동 가속화
식품사들이 해외 공장을 적극 확대하는 배경에는 내수 부진과 원가 절감 목적이 있다. 국내 식품 소비시장이 정체되면서 생산시설 확대보다 해외 진출이 효율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2024년 식품산업 경기동향조사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음식료품 제조업체가 꼽은 가장 큰 경영 애로사항은 내수 부진(71.2%)이었다. 저출산·고령화의 장기화로 식품 소비층이 얇아진 점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자연스레 국내 식품 생산액 중 수출 비중이 확대되는 추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 등의 생산실적’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식품산업 전체 생산실적(매출) 중 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9.36%로 전년 대비 0.73%포인트 줄었지만, 2014년(7.22%)부터 지속 상승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원자재 공급망 불안과 고환율 기조도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 식품사들은 원료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환율이 높아지거나 원료공급이 불확실해지면 원가가 상승하는 구조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원자재 공급망이 불안정해지면서 해외 원료 조달과 생산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최근 환율급등과 미국발 관세 리스크도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이 같은 식품산업의 구조적 변화는 실제 기업실적에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해 식품업체 실적은 해외매출 비중에 따라 희비가 갈렸다. 해외매출 비중이 높은 삼양식품과 오리온은 각각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133%·10.4% 오르면서 실적호조를 보였다. 반면 해외 매출 비중이 낮은 농심·롯데웰푸드 영업이익은 각각 23.1%·11.3% 감소했다. 실적발표를 앞둔 오뚜기의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23.4% 줄었다.
식품제조업 고용성장 시대 저무나
식품산업의 해외 생산거점이 확대되면서 고용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워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정된 투자금이 해외에 집중되면 국내 투자는 줄고 고용 상황도 영향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호 단국대 교수(환경자원경제학)는 “중장기적으로 국내 식품제조업 고용은 둔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우리나라 식품시장은 포화상태인 가운데 해외 설비 투자가 늘어나면 고용은 어느정도 한계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 투자보다는 자동화 설비가 고용 감소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식품업계의 해외 투자는 국내 설비 이전이 아닌 현지 공장 신축과 증설이 중심이란 점에서 인력감소 요인은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다만 최근 식품제조업 인력난 속에서 자동화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은 고용 감소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박미성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식품제조업의 인력부족률은 전 산업 및 제조업 대비 높아 인력 문제가 상존한 산업”이라며 “단기적으로는 베이붐세대·엑스세대 고령자 퇴직연장으로 현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나, 장기적으로 식품기업들의 자동화설비 확대로 단순 노동자는 감소하고, 새로운 기술 전문가 인력수요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건강기능식품, 친환경 대체육 등 고부가가치 식품이 성장이 고용둔화 영향을 상쇄할 것이란 주장도 있다. 전체 식품 고용시장도 당분간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 갈 것이란 분석이다.
박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은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산업 특성상 무역장벽이 높아지면 해외 투자를 확대할 여지는 있다”면서도 “품목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식품 수요가 고부가가치 제품들로 바뀌면서 고용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전체 식품제조업 고용은 당분간 안정적인 성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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