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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대재해 단죄 하세월…기소까지 최대 666일 등록일 2024.10.29 17:48
글쓴이 한길 조회 42

게티이미지뱅크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이 법원의 1심 판단을 받을 때까지 평균 600일 넘게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수사에 소요되는 시간이 전체의 61%가량을 차지해 ‘수사 적체’가 사건 처리 지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50인 미만(5~49인) 기업까지 확대돼 사건 처리는 더욱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비중이 높아 사건 수만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수사하는 고용노동청 수사 인력과 역량은 턱없이 부족해, 체계적인 수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대재해 ‘발생부터 선고까지’ 평균 1.7년


26일 한겨레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기소된 40개 산업재해 사건 공소장과 법원 판단이 나온 13개 사건의 1심 판결문을 전수 분석했다. 그 결과 중대재해 발생부터 기소까지는 평균 374.7일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소 뒤부터 첫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평균 242.8일이 걸렸으며, 이를 더한 총 소요 시간은 617.5일이었다.

그나마 이 사건들은 기소라도 된 사건들이다. 아직도 ‘수사 중’인 사건이 훨씬 많다. 중대재해 사건은 고용노동청이 1차 수사 뒤 사건을 검찰에 넘긴다. 고용노동부가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법이 시행된 2022년 1월부터 2023년 9월 현재까지 고용노동청이 중대산업재해 수사에 착수한 사건만 438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검찰에 송치한 사건은 85건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83건은 2022년 발생한 사건으로, 2023년 사건은 2건에 그쳤다. 법 위반 없음이 명확하거나 법 적용 대상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내사 종결한 50건을 제외하면, 수사 중으로 고용노동청이 들고 있는 사건이 303건에 이른다.

사고 발생부터 검찰 기소까지 가장 오래 걸린 사건은 무려 666일이 소요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두달 만인 2022년 3월 전기차 부품 공장에서 부품을 뜨거운 물이 아닌 에탄올로 세척한 뒤 밀폐 구조 항온항습기에 넣어 건조하는 과정에서 내부 폭발로 인해 노동자가 69㎏짜리 철문에 머리를 맞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수사 결과 이 회사에는 안전보건관리 체계가 전무했다. 피고인이 대표이사와 공장장, 법인까지 셋뿐이었지만 검찰은 노동자 사망 뒤 1년10개월가량 흐른 지난 1월에야 이들을 기소했다.

불기소 사건 역시 지체되긴 마찬가지다. 검찰은 2022년 3월 발생한 동국제강 포항공장 하청노동자 이아무개씨의 사건에 대해 2년 가까운 수사 끝에 올해 2월 최종 불기소 결정했다. 이씨는 부품 교체를 위해 천장크레인에 올랐다가, 갑작스러운 기계 작동으로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숨졌다. 크레인 보수 작업 시 지켜야 할 기본 수칙이 지켜지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 크레인 위에는 신호수도 없었고, 작업자들에게 그 흔한 무전기도 제공되지 않았다.

동국제강은 3개월 만에 유족에게 민사보상금과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고 고용노동청은 몇차례 검찰 수사지휘를 받은 끝에 지난해 2월 책임자들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나마도 ‘실세 사주’는 빠지고 ‘월급 사장’만 포함된 반쪽짜리 송치였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1년 뒤 고용노동청 결과를 뒤집고 불기소 결정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기소된다해도 속도는 더뎠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 가운데 이미 1심 선고를 받은 13건의 평균 처리 기간은 242.8일이다. 2023년 형사사건 1심 평균 처리 기간 185.5일(불구속 기준)보다 두달 가까이 길었다.


인력은 부족, 수사는 복잡…1명 사망엔 압수수색도 안 해


중대재해 사건의 수사 적체는 기본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인력 탓이 크다. 중대산업재해는 고용노동청이 수사를 전담하는데, 수사 인력은 전국에 150명이 채 안 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을 앞두고 지난달 기자브리핑에서 “중대재해 수사 담당 감독관을 100명에서 133명으로 증원했어도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15명을 추가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의 혐의 입증이 어려운 것 역시 수사 적체의 한 요인이다.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를 적용하려면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 의무 위반 여부는 물론이고, 재해 발생과의 인과관계까지 입증해야 한다”며 “법에 정해진 구체적인 안전보건 규정을 지켰는지 여부만 살피던 산업안전보건법 사건보다 까다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법 적용 초기 단계인 만큼 체계적인 수사 노하우가 축적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게다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대표이사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중대재해 수사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점도 사건 처리가 늦어지는 이유로 꼽힌다. 과거에는 산안법 위반 혐의가 일부 드러나더라도, 기업은 ‘벌금 내고 만다’는 식의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 대표이사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회사 쪽이 수사기관과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이 지연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업무 과중이 ‘부실 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초기에는 재해가 발생했을 때 압수수색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사건이 쌓인 뒤부터 일선 고용노동청은 업무 과중을 이유로 노동자 1명만 숨진 사건의 경우 강제수사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 필요한 자료를 회사로부터 임의제출 방식으로 확보하고, 사실관계를 왜곡하려는 시도가 확인될 때만 압수수색, 구속 등 강제수사권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산재 사고 초기에 강제수사를 통해 경영책임자의 지시 문건 등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임의제출로만 수사할 경우 사측에서 증거를 왜곡하거나 조작할 가능성이 있고 대기업일수록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며 “수사 인력이 적어서 불가피하게 수사가 장기화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행정편의주의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취지에 걸맞은 안전보건 수사 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 출신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산업재해 분야에서 수사 인력과 전문성의 부족은 비단 사건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수사 결과를 토대로 교훈을 도출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중대재해처벌법이 재해 예방에 기여할 수 있다”며 “실제로 수사를 하는 근로감독관뿐만 아니라 수사지원 인력을 늘려야 안전보건 수사의 조직적 역량을 키울 수 있고 산업재해를 선제적으로 막는 예방감독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출처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