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사건의 수사 적체는 기본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인력 탓이 크다. 중대산업재해는 고용노동청이 수사를 전담하는데, 수사 인력은 전국에 150명이 채 안 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을 앞두고 지난달 기자브리핑에서 “중대재해 수사 담당 감독관을 100명에서 133명으로 증원했어도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15명을 추가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의 혐의 입증이 어려운 것 역시 수사 적체의 한 요인이다.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를 적용하려면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 의무 위반 여부는 물론이고, 재해 발생과의 인과관계까지 입증해야 한다”며 “법에 정해진 구체적인 안전보건 규정을 지켰는지 여부만 살피던 산업안전보건법 사건보다 까다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법 적용 초기 단계인 만큼 체계적인 수사 노하우가 축적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게다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대표이사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중대재해 수사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점도 사건 처리가 늦어지는 이유로 꼽힌다. 과거에는 산안법 위반 혐의가 일부 드러나더라도, 기업은 ‘벌금 내고 만다’는 식의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 대표이사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회사 쪽이 수사기관과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이 지연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업무 과중이 ‘부실 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초기에는 재해가 발생했을 때 압수수색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사건이 쌓인 뒤부터 일선 고용노동청은 업무 과중을 이유로 노동자 1명만 숨진 사건의 경우 강제수사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 필요한 자료를 회사로부터 임의제출 방식으로 확보하고, 사실관계를 왜곡하려는 시도가 확인될 때만 압수수색, 구속 등 강제수사권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산재 사고 초기에 강제수사를 통해 경영책임자의 지시 문건 등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임의제출로만 수사할 경우 사측에서 증거를 왜곡하거나 조작할 가능성이 있고 대기업일수록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며 “수사 인력이 적어서 불가피하게 수사가 장기화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행정편의주의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취지에 걸맞은 안전보건 수사 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 출신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산업재해 분야에서 수사 인력과 전문성의 부족은 비단 사건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수사 결과를 토대로 교훈을 도출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중대재해처벌법이 재해 예방에 기여할 수 있다”며 “실제로 수사를 하는 근로감독관뿐만 아니라 수사지원 인력을 늘려야 안전보건 수사의 조직적 역량을 키울 수 있고 산업재해를 선제적으로 막는 예방감독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출처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