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관계에서 발생하는 노사 간 이익 및 권리분쟁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조정·판정하기 위해 노·사·공익 3자로 구성된 준사법적 성격을 지닌 합의제 행정기관” 중앙노동위원회 홈페이지에 있는 노동위원회 소개 글이다. 하지만 자신의 책임을 미루는 노동위원회는 신속·공정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노동위원회법 23조(위원회의 조사권 등)는 구제신청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경우 출석·보고·진술 또는 필요한 서류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법 31조(벌칙)는 노동위원회의 보고 또는 서류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보고 또는 거짓의 서류를 제출한 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함으로써, 구제신청 당사자의 조사 회피 또는 거짓 진술에 형사처벌이 가능하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동위원회가 조사관의 출석요구에 불응한 사용자를 처벌했다거나, 거짓 보고 또는 허위 서류제출 행위를 고발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노동위원회 스스로 이 법을 선언적 문구로 만든 셈이다. 무기대등의 원칙과 구제신청의 당사자 무기대등의 원칙은 재판에 나서는 양 당사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법적 다툼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민사소송과 달리 형사소송에서 수사권과 법률적 지식을 가진 검사와 피고인이 대등한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때문에 국가는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를 보장하고, 나아가 국선변호인을 선임하도록 했다(헌법 12조 2항·4항). 노동위원회의 당사자 역시 대등한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해고된 노동자는 자료를 확보하기도 어렵고, 해고 당시에 어떤 자료들이 필요한지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적어도 본안 판단을 받기 위해서는 사업장의 종사자가 5명 이상이라는 것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노동위원회 역시 6조의2(사회취약계층에 대한 권리구제 대리)에서 일정 기준을 충족한 노동자에게 무료로 변호사나 노무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도록 한다. 노동위원회가 노동자와 사용자 지위의 상이성을 인정하는 근거 조항이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가 가장 무섭다? 그러나 노동위원회는 조사권 행사에 인색하다. 노동위원회가 서류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거나, 나아가 거짓 보고 또는 거짓 서류를 제출한 사실이 적발된 사용자를 고발했다는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다. 중앙2024부해107 사건에서 사용자가 제출한 자료가 초심에서 제출된 자료와 다른 거짓 서류임이 심문회의 과정에서 밝혀졌다. 그러나 노동위원회는 사용자가 제출한 서류는 ‘임의 제출 자료’라며 노동위원회의 고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이렇게 노동위원회의 칼은 또다시 칼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노동위원회 조사관에 따라 실무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공문으로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조사관도 있지만, 대부분 조사관은 유선으로 자료제출을 요구한다. 그런데 위 사건의 중앙노동위원회 민원 회신에 따르면 “공문으로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경우 위원회의 요청으로 제출한 자료이므로 고발 대상이 되지만, 유선으로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은 임의로 제출한 자료이므로 고발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설명에 따르면 노동위원회는 사용자가 거짓으로 자료를 제출한 사실보다 자료제출 요구의 형식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21세기 예송논쟁의 재림이다. 노동위원회 직인이 찍힌 공문으로 자료 제출을 요구했는지, 조사관이 유선으로 자료 제출을 요구했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수천 건의 노동위원회 사건 중 노동위원회 명의로 공문을 보내는 사건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나의 법감정과 상식으로는 노동위원회의 변명에 가까운 해명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렇게 거짓 자료 제출을 묵과하고 방치하는 것은 공정은 물론 신속한 판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21세기 예송논쟁을 만든 노동위원회는 홈페이지에 기재된 자신의 소개 글을 다시금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 출처: 매일노동뉴스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182 * 노무법인 한길 블로그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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