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수는 제 업무가 아닙니다.” 음식을 전달하고 떠나려던 찰나에 치킨 무를 가져가라는 고객의 요청이 있었다. 나는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 상점 주인에게 연락해볼 것을 권유했다. 배달을 시작하고 이 말을 하기까지 1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나는 동네배달대행사에서 일하고 있다. 여기서 일한 지 6개월이 넘었다. 그전까지는 배민을 통해 배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달노동자’ 하면 배민이나 쿠팡을 떠올리곤 한다. 동네배달대행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배달노동자 사이에서 동네배달대행사는 ‘일반배달대행사’라고 불린다. ‘일반’이라는 표현으로 알 수 있듯이 일반배달대행사는 우리가 사는 동네 어느 곳이든 있다. 배달노동자 10명 중 8명은 이곳에 소속되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이후 배달이 보편화되면서 거리에서 누구나 배달노동자를 접한다. 하지만 배달노동자의 업무 환경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앞서 말했듯이 배민이나 쿠팡이 아닌, 일반배달대행사에 속한 배달노동자의 업무 환경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배민이나 쿠팡과 일반배달대행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배차 방식’이었다. 인공지능(AI)이 배달노동자에게 콜을 배차해주는 배민이나 쿠팡과 달리, 일반배달대행사는 배달노동자가 콜을 직접 눌러서 배차를 받는 방식이었다. ‘전투콜’은 일반배달대행사를 대표하는 말 중 하나다. 일반배달대행사가 제공한 프로그램에서 콜이 뜨면, 그 콜을 가장 빨리 누르는 배달노동자가 배차를 받는다. 이 모습이 전투적으로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첫 근무일에 이 말을 뼈저리게 느꼈다. 휴대폰을 열고서 프로그램을 확인했다. 프로그램에 콜이 뜨면, 순식간에 콜이 사라졌다. 어떤 콜을 잡아야 할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무턱대고 휴대폰을 눌렀다. 심리적으로 쫓긴 데에는 배달노동이 ‘건당노동’이라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한 건도 소화하지 못해서 한 푼도 못버는 것은 아닐지 두려웠다. 한 콜을 잡고서 다음 콜을 잡기까지 동선을 계산할 여유는 없었다. 간신히 두 개의 콜을 잡았다. 이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 고객의 컴플레인(불평)을 받지 않을 ‘적정한 시간’ 내에 두 개의 콜을 배달하기가 어려운 동선이었다. 배달대행사 관리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정말 감사하게도 자기가 대신 배달 하나를 맡겠다고 했다.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 단건배달을 하는 배민이나 쿠팡과 달리, 일반배달대행사는 ‘묶음배달’을 한다. 전투콜, 묶음배달 등은 일반배달대행사 일의 난이도를 높게 하는 요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관리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에 적응하기가 무척 어렵다. 나는 이틀 정도 관리자의 도움을 받으면서 일을 했다. 덕분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일반배발대행사의 일에 필요한 능력도 알 수 있었다. 운동신경, 지리 정보, 두뇌 회전 등이었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일이라 운동신경이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빠른 배달도 어렵고 사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리고 특정 동네에서 배달하는 것이라 지리 정보를 잘 아는 게 일의 효율을 높이는 데 유리했다. 두뇌 회전도 영향을 끼친다. 프로그램에 뜬 콜을 보자마자 픽업지와 도착지를 계산해서 동선을 짜야 한다. 두뇌 회전이 빠르면, 동선을 효율적으로 짜기 유리하고, 동선이 짧아져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탈 수 있었다. 배민이나 쿠팡의 일도 경험했지만, 일반배달대행사의 일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것은 단지 요구하는 능력이 많아서가 아니라 위험을 더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배달 시간에 더 쫓기게 됐고 운행 중 휴대폰을 만지는 빈도가 더 늘었다. 몇몇 사람들은 배달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면서 지도만 보고 픽업지와 도착지로 이동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여기에 고객의 컴플레인을 받지 않으려면, ‘적정 시간’ 내에 배달을 완료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기준은 없다. 우리 사회는 단지 빠른 배달이 좋은 거라고 여긴다. 이 속도에 배달노동자의 안전은 고려되지 않는다. 배민이나 쿠팡은 예상 도착 시간이 안내되지만, 일반배달대행사의 경우 적정 시간에 대한 암묵적인 룰(규칙)만 존재한다. 통상 조리 완료 후 20분 내에 배달을 마치는 것이 좋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무엇이든 고객의 주관에 의해 언제든 무시될 수 있다. 고객의 컴플레인이 발생했을 때, 배민이나 쿠팡과 일반배달대행사의 차이는 ‘고객센터’의 유무로 갈린다. 배민이나 쿠팡에 존재하는 고객센터는 혹시나 있을지 모를 고객의 폭언으로부터 배달노동자를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어느 정도 해준다. 반면 일반배달대행사의 경우 고객센터가 존재하지 않아서 배달노동자가 직접 고객 컴플레인을 처리하기도 한다. 이러한 구조는 배달노동자가 배달 업무 외의 일을 하게 만들뿐더러, 고객의 폭언에 노출되기도 쉽다. 물론 일반배달대행사에 고객의 컴플레인을 처리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통 배달대행사의 관리자가 이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배민이나 쿠팡과 달리, 일반배달대행사는 소규모 사업장이기 때문에 관리자에게 힘이 별로 없다. 고객이나 상점 주인의 갑질이 발생했을 때, 적극적으로 배달노동자를 보호하기가 어렵다. 상점의 눈치를 봐야해 배달대행사는 배달노동자에게 오늘 하루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배달업은 최근 압도적인 산재사고 1위 업종이 됐다. 산재사망 1위 역시 배달업 차지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여기엔 배달노동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배달노동자는 법적으로 특수고용직이다. 엄밀히 말하면 배달대행사나 상점 주인과 배달노동자의 고용 형태는 직고용이 아니다. 그래서 갑을 관계가 아닌, ‘협력 관계’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갑을 관계로 여겨진다. 일반배달대행사의 배달노동자를 만나면, 다들 배달대행사나 상점 주인으로부터 갑질을 경험해봤다고 말한다. 상점 주인의 경우, 배달노동자에게 빠른 배송을 요구하거나 반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배달업은 사용자성은 있지만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는 산업으로 여겨진다. 배민이나 쿠팡의 경우 인공지능을 통해 배달노동자에게 지시를 하고, 일반배달대행사의 경우 배달대행사의 사장이 배달노동자에게 지시를 하는 사례가 있다. 하지만 배달대행사가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배달노동자의 안전은 개개인이 알아서 확보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배달대행사는 배달에 필요한 경비를 모두 배달노동자에게 전가하고 그만큼 이윤을 더 챙긴다. 배달노동자는 현실에서 을의 위치다. 그리고 배달노동자는 고립되어 일하기 때문에 정보 교류에도 한계가 있다. 배달노동자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이 다른 배달노동자에게도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배달을 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현실을 반영하듯 나는 움츠러들어 있었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후 노동조합 활동을 하기 전까지 그렇게 지냈다. 그리고 나와 다르지 않은 배달노동자도 여럿 보았다. 일반배달대행사의 배달노동자는 좀 더 위험한 환경에서 일한다. 그런데도 배달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회사 쪽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배달대행사를 옮기는 선택이다. 하지만 늘 좋은 결과가 따라오진 않는다. 좋은 배달대행사를 만나는 것이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요행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배달대행사의 배달노동자 대부분은 문제 상황을 견디는 선택을 한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배달노동자 대부분은 ‘하소연할 곳이 생겨서 좋다’고 말했다. 업무 중 부당한 요구가 있으면 따지는 분위기가 생겼다. 이것이 일반배달대행사의 배달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배달노동자 모두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 글은 일반배달대행사 배달노동자를 중심으로 썼다. 관심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관심이 주어지고 그들의 삶이 개선될 때, 전체 노동 환경이 더 좋게 바뀔 거라고 생각해서다. 배달은 ‘돌봄’을 전달하는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배달노동자가 전달하는 음식 덕분에 장시간노동에 지친 이들이 좀 더 쉴 수 있다. 배달은 우리 사회의 필수 노동이다. 모든 배달노동자가 안전하게,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이 앞장설 것이다. 출 처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31013.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