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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차례 사고 경고 무시” 중대재해 ‘최고형’ 불렀다 등록일 2024.10.29 17:49
글쓴이 한길 조회 351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고 형량’인 징역 2년이 선고됐다. 2022년 1월27일 법 시행 이후 1년3개월 만이다. ‘2호 선고’인 한국제강 사건(징역 1년 확정)보다도 형량이 높다. 안전보건 관계 기관의 여러 차례 경고에도 사업주가 사고 위험성을 간과한 부분이 실형 선고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산재 반복에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던 기존 판결과 비교하면 ‘전향적’ 판결이라는 평가다. 기업 스스로 위험요인을 발굴하고 개선하는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을 추진하는 고용노동부 정책에 한계가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이주노동자 끼임사’ 문 개방 상태에 기계 작동

8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울산지법 형사3단독(이재욱 판사)은 지난 4일 중대재해처벌법(산업재해치사)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경남 양산시의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주식회사 엠텍’ 대표 A(35)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법인은 벌금 1억5천만원이 선고됐다. 함께 기소된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총괄이사 B(51)씨는 금고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번 사건은 네팔 국적의 이주노동자가 금형 기계에 협착돼 목숨을 잃은 사고다. 노동자 C(사망 당시 41세)씨는 2022년 7월14일 오전 10시께 다이캐스팅 기계의 내부 금형을 청소하던 중 금형 사이에 머리가 끼여 두개골이 파열돼 즉사했다. 기계 상하단의 안전문 방호장치가 모두 파손돼 있는데도 잠금장치인 ‘인터록’이 설치되지 않아 문을 열어둔 상태에서 기계가 작동됐다. 사고 위험성이 컸는데도 작업 전에 기계가 정지되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대표 A씨가 ‘기계 결함’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2016년 6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산업안전보건책임자를 맡아 공장 안전 현황을 보고받았다. 2021년 9월부터는 안전점검을 위탁받은 대한산업안전협회의 경고가 이어졌다. 검찰은 “피고인은 협회의 안전관리 상태보고서 등을 통해 기계 중 일부 안전문 방호장치가 파손돼 안전문을 열어도 기계 작동이 멈추지 않는 결함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같은 사고 있어” 안전전문기관 경고 ‘외면’

‘빨간불’은 지속해서 들어왔다. 2021년 9월부터 사고 열흘 전까지 약 10개월간 사고 위험성이 지적됐다. 협회는 “기계에서 청소작업 같은 비정형작업을 할 경우 끼임 재해 발생 위험성이 있다”며 “전원 차단, 전원투입부 시건 등 안전조치를 한 후에 작업을 수행하라”고 경고했다. 또 출입문이 개방돼 있어 노동자 출입시 충돌·끼임재해 발생 위험이 있어 인터록을 임의로 해제하지 말라고도 했다. 사고 2~4개월 전 실시한 정밀 안전점검에서도 같은 지적이 반복됐다.

협회가 보낸 ‘마지막 경고’도 무용지물이었다. 협회는 사고 열흘 전인 2022년 7월4일에도 안전관리 상태보고서를 통해 “최근 울산에서 유사한 중대재해가 발생했으므로 끼임 사고 예방을 위해 문이 개방될 경우 작동이 멈추는 인터록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사한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안전조치 사항을 중점적으로 관리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C씨가 소속된 주조팀의 팀장은 안전점검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고, C씨는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채 변을 당했다. 안전보건공단도 사고 설비를 포함한 제품들이 방호장치 기능을 상실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법원 “안전문제 방치, 유족 합의 선처 안 돼”

검찰은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4조3호)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기준 마련(4조5호) △중대재해 발생시 작업 중지 등 매뉴얼 마련(4조8호) △안전·보건법령에 따른 의무 이행 여부 반기 1회 이상 점검(5조) 등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정한 의무 4가지를 A씨가 위반했다고 봤다. 방호장치 결함으로 사고 위험성이 지적되는데도 인력 배치나 예산을 추가로 편성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안전보건 관계법령상 의무이행’ 위반이 적용된 것은 현재까지 선고된 판결 중 두 번째다. 엠텍은 상시근로자 60명을 사용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법원은 ‘경고’를 무시한 고의성이 짙다고 판단했다. 이 판사는 “피고인들은 회사의 전반적인 안전 문제를 방치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질타했다. 특히 “최근 울산에서 같은 유형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는 보고서를 본 직후라도 적절한 조치를 했다면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고 직후 신속하게 피해자 유족과 합의하고 시정조치를 마련했더라도 집행유예 등으로 선처할 수 없다”고 판단한 부분도 주목할 대목이다. 그동안 대부분 판결에서 △유족과의 원만한 합의 △유족의 처벌불원의사가 형량 감경 요소로 언급돼 법정 최저형(징역 1년) 미만으로 이어졌다.

▲ 울산지방법원 청사 전경. <울산지방법원 홈페이지>

가중요소 ‘의무위반 정도 중한 경우’ 적용

유일하게 실형이 선고된 ‘한국제강 사건’과 비교해도 유의미한 가중 요인이 있다. 한국제강 대표도 세 차례의 산업안전보건법 벌금형 전력에 실형을 피하지 못하고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이 확정됐다. 하지만 법원은 감경요소인 ‘처벌불원 또는 실질적 피해 회복’만 특별양형인자로 반영했다. 이에 징역 6개월에서 1년6개월의 감경 권고 구간이 형성됐다. 반면 이번 사건에서는 ‘안전·보건조치의무 위반 정도가 중한 경우’를 가중요소로 삼았다. 그 결과 징역 2년~5년으로 권고형 범위가 넓어졌다. 박다혜 변호사(법률사무소 고른)는 “법원이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 양형기준을 참고하면서 유족과의 합의 등 감경요소만 지나치게 고려하고 가중요소는 고려하지 않는 관행이 문제였다”며 “이번 판결에서 가중요소로서 ‘의무위반의 정도가 중한 경우’를 판단한 점에서 의미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간의 ‘솜방망이 처벌’에서 벗어난 전향적인 판결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번 판결 이전에는 법 시행 이후 선고된 14건 판결 중 실형은 한 건에 그쳤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회사 대표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불이행이 단순히 부작위 정도가 아니라 매우 고의성이 짙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관행이 되다시피 미약한 처벌로 일관하다가 형량을 재고할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법조계 “고의성 짙다고 판단, 형량 재고 계기”

제조업 사업장의 안전 취약성이 다시 드러낸 사건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던 기회와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실형 선고를 통해 엄벌에 처하겠다는 메시지를 줬다”며 “특히 제조업 이주노동자 채용시 언어소통 문제로 안전교육에 취약할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법원 판단은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최소한의 안전보건관리체계도 없었고, 사고 직전 관련 개선사항을 전달받았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점을 법원이 중요하게 판단했다”며 “따라서 동종전과가 없고 유사한 사고가 없었는데도 중형이 나왔다”고 말했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공학)는 “최소한의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했더라도 사전에 인식 가능한 고도의 위험에 대해 방치해 중대재해로 이어진다면 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음을 보여준 판결”이라고 짚었다. 다만 “안전관리책임자가 아닌 사실상의 근로자인 총괄이사에게 실형을 선고한 부분은 산업안전보건법령 목적에 비춰 과잉 처벌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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