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삼립 시화공장 노동자의 기계 끼임 사망사고와 관련한 수사당국의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이 세 차례나 기각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과 경찰은 영장 기각 사유에 대해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아리셀 화재 참사·신안산선 지하터널 공사장 붕괴·서울세종고속도로 공사현장 교량 상판 붕괴 사고에서는 압수수색이 사고 직후 이뤄져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판사 ‘지적사항’ 보완 청구에도 또 기각
10일 수사당국에 따르면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지난 5일 경찰·고용노동부·검찰 등 3개 기관이 경기 시흥시 소재 SPC삼립 시화공장 등을 대상으로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 시화공장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사건을 수사 중인 시흥경찰서는 이번 주 중에 네 번째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당국의 압수수색 무산으로 진상규명은 사고 20일이 넘도록 멈춘 상태다. 앞서 수사팀은 지난달 19일 사망사고 발생 직후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수사팀은 영장전담판사의 ‘지적사항’을 보완해 지난달 하순께 재차 영장을 청구했으나 또다시 기각됐다.
영장기각 사유에 대해선 법원과 경찰·노동부 모두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SPC삼립 시화공장 압수수색 영장에 관한 건은 일체 외부에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동부 역시 영장 기각에 대해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라면서도 “기각사유는 비공개”라고 전했다.
특히 법원은 이번 사건을 담당한 영장전담판사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의 영장전담판사는 2명(형사11단독·형사12단독)이다. 두 부장판사는 각각 2023년 2월과 올해 2월부터 영장청구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영장전담판사가 2명이 맞지만, 판사의 개인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압수수색’에 관한 부분은 형사소송법 215조(압수·수색·검증)에 규정돼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검사는 범죄수사에 필요한 때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고, 해당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에 한정해 지방법원 판사에게 청구해 발부받은 영장에 따라 압수·수색 또는 검증을 할 수 있다. 노동부 사법경찰관도 검사 청구로 법원에서 발부받은 영장 집행이 가능하다.
같은 계열사 신속한 압수수색, 이번만 예외
통상 중대재해 발생시 압수수색이 즉각 진행됐다는 점에서 SPC삼립 시화공장에 대한 세 차례의 영장 기각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비판이 인다. 실제 지난해 6월 노동자 23명이 숨진 아리셀 화재 참사에서도 수사당국은 사고 발생 이틀 만에 노동부와 합동으로 아리셀과 인력공급업체 메이셀, 박순관 대표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올해 2월 노동자 4명이 사망한 서울세종고속도로 공사현장 교량 상판 붕괴 사고에서도 수사당국은 사고 3일 만에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게다가 같은 SPC 계열사에 대한 압수수색도 신속히 이뤄졌다. 2022년 10월 경기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노동자가 소스 교반기에 끼어 숨진 사고와 관련해 압수수색은 사고 5일 만에 진행됐다. 2023년 8월 50대 여성노동자가 반죽 기계에 끼어 목숨을 잃은 성남 샤니 제빵공장 사고에서도 3일 만에 압수수색이 실시됐다.
이 때문에 SPC삼립 시화공장의 압수수색만 여러 차례 무산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는 이유는 대상이 광범위하거나 영장에 구체적으로 내용이 담기지 않았을 경우에 한정된다. 산재 사망사고 발생시 압수수색을 현장감식과 함께 진상규명을 위해 파악해야 할 중요한 절차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 “영장 기각 극히 이례적, 실체 파악 방해”
수사팀의 4차 압수수색 영장 청구에도 법원에서 기각될 경우 수사에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SPC삼립에서 자료를 임의제출 받는 형태로 수사할 수밖에 없다. 수사팀은 압수수색 장소에 대한 범위를 좁히고, 압수 대상물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쳐 다시 영장 청구를 검토할 계획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강제수사 없이 임의제출 형식으로 수사할 경우 대상자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자료를 선별해 제출할 것”이라며 “이걸 과연 믿을 수 있겠나”고 말했다.
법조계는 압수수색 영장 기각이 사건의 실체 파악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내다본다. 박다혜 변호사(법률사무소 고른 대표)는 “중대한 산업안전보건 범죄가 반복해서 발생되고 있는 사업장에서 강제수사는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보인다”며 “사회적 법익에 대한 범죄인 중대재해 수사에 있어 그동안 법원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데, 또다시 수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오명이 만들어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제수사를 통해 자료를 확보하지 않고 사고 진상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는 견해도 많다. 손익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실을 확인하려면 피혐의자들이 증거를 짜맞추기 전에 초동수사가 굉장히 중요한데, 인신구속도 아니고 물증이나 서증을 확보하기 위한 압색수색 영장을 기각시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도 우려를 나타냈다. 소비자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이날 성명을 통해 “SPC쪽이 사고와 관련된 자료를 은닉할 수 있는 초기 시점에서 압수수색이 무산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법원이 사망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정당한 수사 활동조차 차단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 단체는 “압수수색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고의 정확한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히기 어렵다”며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조사와 수사 절차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19일 오전 3시께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윤활 작업을 하다가 회전 중인 냉각 컨베이어 벨트에 상반신이 끼이는 사고로 숨졌다. 수사팀은 같은달 27일 현장감식을 진행했고, 공장 관계자들을 형사 입건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노동부는 최근 김범수 SPC삼립 대표이사와 법인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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