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최근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엔진공장에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근무한 노동자 1명이 2021년 원청인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옛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고용간주 규정에 의한 근로자지위확인 등을 구하며 제기한 소송에 대해서, 실효의 원칙에 따라 원고의 권리가 실효됐다고 판단하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원심으로 파기·환송했다.
2. 사실관계 및 이 사건의 쟁점
가. 원고는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사내하청업체 ‘거광기업 → 태승기업 → 협진기업 → 유진기업’순으로 소속이 변경되며, 피고 아산공장 엔진공장에서 근무했다. 통상적으로 피고의 공장 내에서는 업체가 폐업되더라도 소속 근로자들은 다른 업체로 고용승계되는데, 위 유진기업은 피고의 ‘델타엔진’ 단종을 이유로 폐업해, 당시 원고를 포함한 다수의 근로자들이 해고당했다. 원고는 2010년, 2015년 집단적으로 이뤄진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는 생계로 인해 참여하지 못했다가 2021년 1월 단독으로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
나. 1심에서는 파견근로관계 인정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됐고, 1심 법원은 대법원이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등에서 제시한 5가지 표지가 존재한다고 보고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했다.
2·3심에서는 피고는 ‘실효의 원칙’에 따라 원고의 고용간주를 주장할 권리가 실효됐다고 추가적으로 주장했고, 해당 쟁점에 대한 판단에 따라 2·3심 간의 결론이 엇갈렸다.
3. 2심 판결의 요지
2심 판결은 ① 파견근로자의 권리가 실효됐다고 판단하는 데에는 신중을 기해야 하고, ② 노동법상 확립된 견해가 없는 등의 이유로 승소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근로자들이 비용·시간이 소요되는 법적 권리의 행사를 상당 기간 하지 않았다고 해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실효의 원칙을 섣불리 적용하는 것은 자제될 필요가 있고, ③ 원고는 2009년 9월26일께 유진기업의 폐업으로 부득이 피고 아산공장에서 더 이상 근무하지 못하게 된 것인 바, 원고가 그 이후 다른 사업체에서 근무했다는 사정이나, 2010년 7월22일 피고의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해 피고와의 근로자파견관계를 최초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2008두4367)이 선고됐고, 이후 피고를 상대로 근로자지위의 확인 등을 구하는 피고의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집단소송이 계속됐다는 사정 등만으로는 원고가 더 이상 권리행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할 만한 피고의 정당한 기대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설시한 후, 실효의 원칙에 관한 피고의 주장을 배척했다.
4.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① 원고는 직접고용이 간주된 2002년 4월22일로부터는 약 18년, 파견근로관계가 종료된 2009년 9월26일부터는 약 11년4개월 뒤인 2021년 1월24일에 이르러서야 이 사건 소를 제기했고, 오히려 원고는 피고의 자동차 제조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직종에서 근무했고, ② 대법원 2008두4367 판결 이후로 피고의 협력업체 소속 직원 수천 명이 대규모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고, ③ 피고의 협력업체 소속 직원과 피고 간에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하는 다수의 판결이 선고됐음에도 원고는 그로부터 약 6년이 지나서야 이 사건 소를 제기했고, ④ 파견법상 직접고용의무 규정에 따른 고용 의사표시 청구권에는 10년의 민사시효가 적용되는데(대법원 2024. 7. 25. 선고 2024다211908, 211915, 211922 판결), 이 사건의 경우 실효의 원칙을 부정한다면 직접고용 의사표시 청구권과의 형평에도 어긋난다는 이유를 설시하고, 원심 판결에는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실효의 원칙 적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5. 대상판결의 의미
신의칙은 그 내용이 명확하지 않고 유동적이어서, 그 판단이 법관의 재량에 맡겨져 예측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 기존에 우리 법원은 해고무효 소송과 관련해 실효의 원칙을 적용해 원고의 청구를 쉽게 배척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 사건은 근로자파견관계에 관한 소송에서도 실효의 원칙을 적용한 최초의 판결로 보인다. 파견법의 입법목적을 보면, 파견근로자의 고용불안 문제를 개선해 파견근로자를 더욱 두텁게 보호해야 함에도, 대상판결은 일반원칙인 실효의 원칙을 손쉽게 적용했다는 점에서 아쉽다.
대상판결이 실효의 원칙의 시기적 요건을 검토하기 위해 장단(長短)을 측정했던 다양한 기간(원고가 근로 제공을 종료하고부터 소를 제기까지의 기간 11년4개월, 대법원 2008두4367 판결 선고 이후 이 사건 소 제기까지의 기간 약 11년, 2010년 집단소송이 제기시부터 소 제기까지의 기간 약 11년)은 이미 원심에서도 검토했던 것들이다. 원심 재판부 또한 위와 같은 기간의 경과를 측정해보고 나서, 그럼에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원고가 더 이상 권리행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할 만한 피고의 정당한 기대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효의 원칙을 적용하면 결과적으로 제정 파견법 6조3항 단서는 ‘당해 파견근로자가 명시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경우’와 동일한 법적 효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파견근로자의 권리가 실효됐다고 판단하는 데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원심 판결의 타당성이 더 높다.
또한 대상판결은 ‘이 사건에서 실효의 원칙의 적용을 부정한다면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되는 직접고용 의사표시 청구권과의 형평에도 어긋난다’는 점도 이유로 설시해, 일견 실효의 원칙 적용 기준을 10년으로 제시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당초 제정 파견법에서 ‘고용간주 조항’을 둔 입법자의 의도는 파견근로자를 두텁게 장기간 보호하고자 함에 있었다. 이후 정부가 피고를 포함한 재계에서 개정 주장을 일정 정도 수용해 ‘고용간주 조항’을 ‘고용의무 조항’으로 대체하는 개정안을 제출했던 것이다. 위와 같은 개정 경위를 고려하면, ‘고용간주 조항’을 시행하던 기간에 대해서 만연히 ‘고용의무 조항’의 소멸시효 기간 10년을 적용해 일정한 기간이 지났다고 해서 직접고용에 관한 권리가 멸각됐다고 해석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요약하면, 대상판결은 파견법상 직접고용이 간주된 자의 권리가 실효됐다고 판단하면서 ‘10년’이라는 시기적 요건을 거칠게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반원칙인 실효의 원칙을 손쉽게 적용해 파견법상 근로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만하다. 실효의 원칙 적용 여부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이미 판단을 했다고 해도, 이에 따라 원고의 직접고용에 관한 권리가 실권됐다면 과연 언제 해당 권리가 실효됐는지, 피고의 임금지급 의무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향후 파기환송심에서 다퉈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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