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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업무상재해 맞지만” 아빠 태아산재 요양급여 ‘불승인’ 등록일 2024.07.04 17:11
글쓴이 한길 조회 208
근로복지공단이 아버지 태아산재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면서도 산재요양급여는 불승인했다. 아버지는 법률상 ‘임신 중 근로자’가 아니란 이유다. 2022년 1월 이른바 ‘태아산재법’이 시행된 뒤 아빠 태아산재에 대한 첫 판단이다.

4일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는 차지증후군을 안고 태어난 전 삼성전자 직원 정아무개씨 자녀의 질병이 정씨의 반도체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서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 건강손상자녀에 대한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이 ‘임신 중 근로자’로 국한돼 있다며 급여를 불승인했다.

삼성전자 근무 아버지 업무환경, 생식보건에 영향

정씨는 2004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2006년 12월16일부터 2011년 12월31일까지 삼성디스플레이㈜(당시 삼성전자 천안캠퍼스)에서 박막트랜지스터(TFT) 자동광학검사(AOI) 설비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러던 중 2008년 5월14일 낳은 자녀가 2011년 5월11일 차지증후군으로 진단받았고 2021년 12월1일 공단에 산재요양급여를 신청했다.

정씨는 TFT 공정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아산화질소·암모니아·산화아연 같은 생식독성 물질 13종에 노출됐고, 보호구가 없는 당시 안전보건 수준 특성상 고농도 노출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화학물질 외에도 방사선과 장시간 교대근무, 직무스트레스 등이 생식보건건강에 영향을 줘 정자가 손상돼 자녀의 차지증후군을 유발했다고 강조했다.

공단은 정씨의 업무와 자녀의 차지증후군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봤다. 서울남부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정자 착상 3개월 전 동안 근로자(정씨)는 TFT 공정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화학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고 근무 당시 다양한 독성 물질 간 복합적 상호작용했을 가능성 및 간헐적으로 노출된 방사선과 고온 등 다른 유해환경 때문에 독성이 증가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어 “전자산업 종사 남성의 2세에서 선천성기형 및 선천성기형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점과 근로자의 과거 근무시기, 근무라인을 고려하면 근로자의 독성물질 노출이 현재 역학조사 기준보다 높았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정씨 자녀 질환과 정씨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차지증후군을 유발하는 유전자(CHD7)의 이상은 아버지쪽 영향일 가능성이 높은 기존의 연구결과들도 근거가 됐다.

제주의료원 사태 계기로 제도 시행, 사각지대 남아

그러나 산재요양급여는 결과적으로 불승인됐다. 정씨가 산재보험법 91조의12(건강손상자녀에 대한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에서 정한 ‘임신 중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91조의12는 태아산재를 인정하기 위해 2021년 12월 국회가 개정하고 이듬해 1월 정부가 공포한 이른바 ‘태아산재법(개정 산재보험법)’ 조항이다. 이 조항에서 명시적으로 ‘임신 중인 근로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 아버지인 정씨는 배제된 것이다.

태아산재 문제를 제기해 온 반올림은 “이번 결정은 2009년 약물 노출 등으로 유산하거나 아픈 아이를 낳은 제주의료원 간호사를 떠올리게 한다”며 “당시에도 공단은 업무상 재해를 알면서도 법률에 근거가 없다며 불승인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제주의료원 집단산재를 계기로 2021년 21대 국회가 태아산재법을 만들었지만 사각지대가 남은 셈이다. 당시 태아산재법을 만드는 데 일조한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국회에서도 관련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는 상태다.

반올림 “재심·법원 소송과 법률 개정 병행”

반올림은 재심청구와 법률 개정 운동을 병행할 방침이다. 정씨를 대리한 조승규 공인노무사(반올림)는 “재심을 청구할 방침이나 법률상 표현이 명확해 한계가 있어 보이고 결국 제주의료원 당시처럼 소송까지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며 “이와 함께 협소한 태아산재 규정을 확대하는 법률 개정도 시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