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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MZ세대’ 스물두 살 생산직의 ‘마지막 새해’ 등록일 2023.05.19 15:53
글쓴이 한길 조회 197

근로시간 개편’이 화두다. 정부는 ‘주 최대 69시간(6일 기준)’ 근무를 허용하는 근로시간 개편방안을 입법예고 했다.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무리”라고 진화에 나섰다. 현행 ‘주 52시간’과 ‘주 60시간’ 사이에서 근로시간이 조정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럼에도 ‘몰아치기 노동’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크다. ‘과로’를 넘어 노동시간이 한꺼번에 몰리는 ‘폭로(暴勞)’ 사회가 될 수도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장시간 노동, 특히 집중근무로 과로해 숨지거나 쓰러진 노동자들과 유족을 연속으로 심층 인터뷰한다. ‘몰아서 일하는’ 방식의 위험성을 짚는다. 과로사 통계를 분석해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살핀다. <편집자>

 

이도람(가명)씨의 삶은 스물두 살을 맞은 지 5일 만에 멈췄다. 2021년 1월5일 새벽 3시께 이씨는 홀로 직장 기숙사에서 싸늘하게 식어 갔다. 전날 몸이 좋지 않아 오전에 조퇴한 뒤 동료 두 명과 야식을 먹고 잠들었다가 깨어나지 못했다. 추정 사인은 ‘비대심장근육병’. 동료는 다음날 이씨가 출근하지 않자 방에 갔다가 바닥에 엎드린 이씨를 발견했다.

 

1998년에 태어난 이씨는 이렇게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른바 ‘MZ세대’의 죽음이다. 이씨의 노동시간을 보면 ‘주 최대 69시간(6일 기준)’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의 위험성이 드러난다. ‘근로시간 선택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정부 주장과는 정반대의 ‘장시간 노동’이 소송에서 확인됐다. 'MZ노조'라고 불리는 새로고침협의회·청년유니온 등도 정부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평소 약간의 과체중만 있을 뿐 건강했던 이씨가 갑자기 숨을 거둔 결정적 원인은 ‘만성과로’였다. 이씨는 2016년 10대 중반의 나이에 경남 김해에 있는 금형 제조업체 K정밀에 입사했다. 주로 금형 조립·분해를 담당하는 생산직 사원으로 근무했다. 근로계약서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8시간(중식 한 시간 제외) 일하도록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급여형태가 ‘시급제’인 탓에 연장근로는 잦았다. 이씨는 회사와 시급 9천원에 근로계약을 맺었다. 오후 5시30분~10시까지 잔업하거나 휴일에 특근을 하면 시급 1.5배를 주기로 했다.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일하면 시급 2배를 책정했다. 더 일해야 돈을 더 벌 수 있는 구조였다. ‘업무사정상 연장·야간·휴일근로를 시행할 수 있다’고 정한 근로계약서 조항도 발목을 잡았다.

 

실제 연장근무는 일상적이었다. 유족측에 따르면 사망 한 달 전부터 거의 매일 초과근무를 했고, 매 주말에도 일했다. 2020년 크리스마스 다음날이 주말인데도 이씨는 연차를 써서 쉬었다. 12월 한 달 동안 적게는 3시간에서 많게는 9시간이 넘게 야근했다. 4주간 총연장근무 시간만 69시간(1주 약 17시간)에 달한다. 4주간 정규 근로시간이 160시간(하루 8시간×5일×4주)인 점을 고려하면 잔업을 합했을 때 숨지기 전 4주 동안 229시간(1주 평균 57시간)을 일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장시간 노동은 이미 사고 12주 전부터 이어졌다. 이씨가 넉 달 동안 1주 평균 70시간 가까이 일한 주만 일곱 차례로 파악됐다. 사고 7주 전에는 무려 84시간22분을 일했다. 하루 16.8시간을 공장에서 보낸 셈이다. 유족측은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을 61시간54분이라고 계산했다. 고용노동부 고시인 ‘뇌심혈관 질병의 업무 관련성 인정기준’에서 과로로 인정하고 있는 12주간 1주 평균 60시간 근무와 1주 평균 4주간 64시간 근무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해를 넘겨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씨는 2021년 1월5일 숨진 채 발견됐는데, 같은달 1~3일은 신정연휴였다. 그런데 잔업·특근현황표에 따르면 이씨는 1월3일에도 출근했다. 6시간 넘게 일한 뒤 퇴근해 동료에게 피로를 호소했는데도 다음날 쉬지 못했다. 결국 사망 전날인 1월4일 8시간40분 일한 뒤 다음날 새벽 숨졌다.

 

‘열악한 작업환경’은 장시간 노동에 무게를 더했다. 이씨는 매일 무게 300~5천킬로그램에 달하는 금형을 반복해 날라야 했다. 횟수만 하루에 1.5세트, 1주에 7~8세트, 한 달에 30세트에 이르렀다. 하루에 서서 일하는 시간만 4~5시간에 달했다. 먼지가 날리고 시끄러운 기계 소음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산업보건협회가 2020년 실시한 작업환경측정 결과에 따르면 K사의 소음 수준은 심장질환을 부를 수 있는 74.3~78.3 데시벨로 측정됐다.

 

이씨는 각종 유해물질에도 무방비로 노출됐다. 금형 가공·사출·조립 과정에서 에틸벤젠·니켈·크롬 등이 이씨의 신체를 괴롭혔다. 이러한 문제는 산업보건협회 지적에도 나왔다. 협회는 공장 조사 후 회사에 “독성이 덜한 물질로 변경해 사용하고, 안정장비를 갖추라”고 요구했다. 소음과 관련해서도 70데시벨 이상 소음은 심장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정한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해당한다. 하지만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셈이다. 하지만 공단은 2021년 9월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망 직전 돌발상황이나 급격한 업무환경 변화가 확인되지 않고, 단기·만성과로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씨의 1주 평균 근로시간도 숨지기 전 4주간 54시간, 12주간 57시간으로 산정했다. 노동부 고시에 미치지 못한다.

 

이씨 부모는 즉시 법원으로 향했다. 장시간 노동과 유해한 작업환경에 따른 사망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 부장판사)는 올해 3월10일 공단 판정을 뒤집고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공단이 항소하지 않으면서 지난 4월 1심이 그대로 확정됐다. 법원 감정의(직업환경의학과) 소견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감정의는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에서 이씨의 장시간 연장근로가 돌연사의 원인이 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재판부 판단도 같았다. ‘연장근무의 일상화’를 주목했다. 재판부는 “2020년 1~10월 망인의 출퇴근 내역을 보더라도 빈번하게 연장근무를 했던 것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사고 전날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조퇴할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도 크리스마스 연휴와 신정 연휴는 누적된 피로를 해소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봤다.

 

근로시간도 4주간 1주 평균 업무시간이 약 58.75시간에 달한다고 추정하며 과로를 사실상 인정했다. 노동부 고시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만으로 상병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장기간에 걸친 과로로 인한 육체적 피로와 업무환경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누적됐다”고 분명히 했다.

 

논밭에 둘러싸인 공장 기숙사에서 고립됐던 이씨의 심장은 22년 만에 멈추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MZ세대 노동자에게 노동시간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정부 방침은 허울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공단 판정도 형식에 치우쳤다는 지적이 인다. 이씨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공단은 다른 수많은 사건에서 나이가 많고, 기저질환이 있던 노동자의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기질적 문제라고 판단했다”며 “나이와 상관없이 산재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스물두 살의 건강한 청년노동자가 사망한 것은 명백한 과로사”라고 강조했다.

 

 

 

홍준표기자

출처: 매일노동뉴스 제7606호 2023년 5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