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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 막겠다더니] 표준계약서는 ‘구멍’, 국회 법안심사는 ‘멈춤’ 등록일 2023.03.31 11:05
글쓴이 한길 조회 198
‘일체의 작품 활동과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권을 장씨에게 양도한다. 원작물 및 그에 파생된 모든 2차적 사업권을 포괄한다.’

지난 11일 4년간의 저작권 소송 중 세상을 등진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와 캐릭터 대행사 ㅎ사 사이에 체결한 계약 내용이다. ㅎ사는 이 계약서 내용을 근거로 이 작가가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다른 작품에 등장시키자 2019년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기사 참조 본지 3월14일자 8면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 극단 선택 배경엔, 불공정 계약”>

문화체육관광부는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문체부는 만화 분야 표준계약서를 마련하겠다고 15일 밝혔다. 2차적 저작물 작성권 내용을 구체화하고, 제3자 계약시 사전동의 의무 규정을 포함해 창작자 저작권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하지만 웹툰 현장에서는 문체부가 만드는 표준계약서가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를 만들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업주가 선 하나 그려도 ‘지분’ 생긴다?

만화업계 표준계약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문체부는 지난해 12월 외부 업체 연구용역으로 개발한 웹툰 표준계약서를 공개하고 설명회를 가졌다. 웹툰작가노조(위원장 하신아)와 한국여성만화가협회는 현장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며 지난 1월 문체부의 설명회를 설명회를 보이콧했다. 문체부는 이달부터 노조의 의견을 듣고 있다. 10일 수렴회를 열었다.

쟁점은 저작권의 지분을 가르는 방식이다. 연구용역을 통해 만들어진 표준계약서는 웹툰 제작 과정 중 일부라도 참여하면 저작권자로 인정하고 일부 지분을 부여하게끔 했다. 웹툰은 보통 △기획안 및 시놉시스 작성 △시나리오 작성 △콘티 △데생 △펜선 △채색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 중 한 과정에라도 참여한다면 저작권자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문체부는 지분을 명확히 해야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확실히 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노조는 이 같은 방식으로는 창작자의 저작권이 사업자에 빼앗길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플랫폼업체 또는 제작사 같은 사업주측이 단순히 아이디어나 소재를 제공한 것만으로, 혹은 웹툰을 그리기 위해 사업주가 고용한 작가들이 선을 그리거나 색을 칠한 것만으로 사업주가 저작권을 가져가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법원 판결은 단순한 아이디어나 소재 제공에 불과해 표현 자체에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없는 행위는 저작권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 창업자 한희성씨는 장르, 스토리 전개방향 등 창작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주장하며 미성년자였던 웹툰 작가의 작품에 저작자로 이름을 올렸다가 1천만원의 벌금을 받았다. 2심까지 판결은 유지되고 있다.

하신아 위원장은 “실질적으로 글작가와 그림작가의 지분이 5대5로 있는 것으로 간주된 상황인데, 현재 웹툰은 원래 그림작가 외에 제작사가 고용한 데생과 펜선·채색 작가의 손을 거쳐 만들기 때문에 저작권이 제작사로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 위원장은 “기획을 문서 형태로, 말로 했다고 해서 저작권이 나오는 게 아니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도구를 써서 표현한 사람에게 발생하는 권리”라고 강조했다.

창작자 저작권 보호법 발의 잇따라
국회 문체위 법안소위에서 ‘잠만’

문체부가 관련 법안들이 올해 상반기에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면서 국회에도 시선이 쏠린다. 창작자가 사업자에게 지식재산권 양도를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과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있었다.

21대 국회에서도 계약서상 ‘대가 없는 포괄적 저작권 일체 양도’ 조항을 금지하는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된 논의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노웅래·도종환 의원이 저작권법 개정안을, 유정주 의원이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에서는 김승수 의원이 콘텐츠산업 진흥법 개정안과 문화산업 공정유통 및 상생협력에 관한 법률안을 냈다.

노웅래 의원안은 아직 창작되지 않았거나 창작이 예정되어 있지 않은 저작물에 대한 저작재산권의 포괄적 양도나, 장래 저작물의 포괄적 이용 허락을 무효로 한 내용이 핵심이다. 도종환 의원안은 저작재산권 양도규정을 만들어 저작권을 양도하는 경우라도 2차적 저작물을 작성해 이용할 권리를 포함하지 않도록 했다.

문체부는 유정주 의원안과 김승수 의원안 통과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들 법안은 지식재산권의 양도를 강제하거나 무상으로 양수하는 행위, 또는 통상적인 거래관행에 비춰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지식재산권 사용 수익을 분배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뼈대다.

그런데 법안이 이달에는 논의될 가능성은 적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는 21일 오전에 예정돼 있지만 웹툰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은 없다.

범유경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는 “노웅래 의원안이 2020년에 나왔는데 올해 2월에야 공청회가 있을 정도로 논의가 느리게 이뤄지고 있다”며 “저작권법 개정 논의가 빠르게 진행돼야 작가들이 정당한 권리를 빼앗기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무법인 한길 블로그 http://blog.naver.com/hanguilhrm
출처 : 매일노동뉴스 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