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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처음은 저성과였다, 3년 새 네 번 해고된 노동자 등록일 2023.03.29 14:51
글쓴이 한길 조회 203
'부르르르.’

헤어질 때쯤 휴대전화가 진동으로 떨렸다. 신민혁(43·가명)씨가 얼른 휴대전화를 집었다. “노동위원회 변론일이 잡혔나 했는데 아니네요.” 멋쩍게 웃었다. 그는 “아마 다음달 정도 변론일이 잡힐 것 같다”고 말했다. 네 번의 해고로 다섯 차례나 노동위원회를 다녀온 그는 어느새 해고 전문가가 됐다.

2009년부터 외국계 조명기업인 시그니파이코리아㈜를 다닌 그는 2020년 9월 처음 해고됐다. 같은해 8월25일 2차, 2021년 6월1일 3차 해고를 당했다. 지난 3월1일 가까스로 복귀했지만 회사는 3월17일 그를 또 해고했다. 한 회사에서 3년간 네 차례나 해고를 당한 사정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2일 오전 자택 인근 한 카페에서 신씨를 만났다.

저성과자 낙인찍고 4차례 해고
12년 영업일 했는데 “직무능력 없다”

“2018년과 2019년 실적이 저조했습니다. 2018년 회사 내 구조조정 등으로 부실한 영업처를 떠맡았는데 이 때문에 성과가 낮았고, 그래서 이듬해 별다른 얘기도 없이 돌연 업무가 어려운 영업팀으로 발령났어요. 그러고는 성과가 부실하다며 성과향상 프로그램(PIP)에 넣더니 그때부터 해고하기 시작한 겁니다.”

왜 네 차례나 해고를 당했냐는 물음에 신씨가 답했다. 그는 2009년 입사 이후 줄곧 이른바 트레이드팀에서 일했다. 한달에 10억원을 벌기도 하는 등 수년간 양호한 성과를 냈지만 2018년 사달이 났다. 신씨는 그 해 매출목표 대비 달성률은 54%를, 연봉 대비 실매출은 38.7배를 달성했다. 전체 영업사원 14명 중 두 지표 모두 11번째다. 그가 속한 트레이드팀으로만 보면 두 지표 모두 꼴찌다.

내막이 없는 건 아니다. 시그나피아코리아는 본사가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원래 필립스조명과 한 몸이었지만 2016년 분사했다. 이후 2년 뒤 구조조정이 있었다. 2018년 8~9월 직원 네다섯 명이 퇴사했다. 실적이 안 좋은 사람들이 주로 나갔고, 그 부실한 영업처를 신씨가 도맡았다고 한다.

이런 사정에도 회사는 그 한 해의 실적을 문제 삼아 2019년 1월 그를 도소매점을 거치지 않고 조명을 사용하는 기업 소비자를 상대로 직접 영업을 수행하는 엔드유저(End-User)팀으로 발령 냈다. B2B영업을 하는 트레이드팀과 달리 엔드유저팀은 2016년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아무도 가려 하지 않으려 했을 정도로 어려운 자리다.

인수인계를 받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살펴보니 상황은 열악했다. 신씨가 2019년 할당받은 매출목표는 5억원이다. 그런데 4억원 매출을 발생해야 할 업체는 2018년 12월 이미 LED조명사업을 하지 않는다고 시그니파이코리아에 통보했다. 나머지 1억원 매출목표가 잡힌 회사도 “2019년에는 사업할 게 없다”고 전달했다. 매출목표가 불합리했다. 그즈음 “찍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회사는 1년을 꼬박 기다려 2019년 10월 신씨에게 PIP 실시를 알렸다. 당초 기간은 2019년 12월31일까지지만 인사팀장인 ㅈ이사는 신씨에게 PIP 연장 결정을 통보했다. 그러나 2020년 3월31일까지 PIP를 연장하겠다고 한 통보가 무색하게 회사는 2020년 1월10일 인사위원회를 개최하고, 사흘 뒤인 2020년 1월13일 신씨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해고의 막이 올랐다.

다섯 차례 노동위 다툼 중 한 번 이긴 회사
절차적 하자 문제에 “치유했다”며 해고 지속

1차 해고 이후 네 차례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을 심문한 노동위원회에서 회사는 3차 해고 초심 한 차례만 이겼다. 1차 해고 당시 저성과를 근거로 한 징계가 과했다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이 나왔지만 이후에는 줄곧 절차를 지키지 않아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1차 해고 당시 서울지노위는 “신씨의 업무 성과 및 역량이 저조한 것을 징계사유로 삼은 것은 정당하다”면서도 “신씨 외에도 성과평가 점수가 저조하거나 매출목표 달성률이 낮아 PIP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반면 신씨에 대해서는 징계의 종류 중 가장 중한 해고를 한 것은 징계양정이 과도해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회사가 징계를 하면서 신씨에게 소명기회도 주지 않은 점도 부당해고로 판정한 사유에 들어갔다.

저성과를 근거로 한 해고가 좌절하자 회사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2020년 3월17일 서울지노위 부당해고 판정으로 신씨가 그해 5월4일 복직하자 회사는 신씨를 대상으로 당일 2차 PIP를 실시하고, 같은해 7월3일 신씨의 2018년·2019년 저성과를 근거로 감봉 3개월 징계를 내렸다. 그리고 PIP 종료 이후 신씨에게 직무탐색 기간을 가지라며 사무실 소독 담당자로 발령했다. 신씨는 “모멸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후 회사는 직무탐색 기간이 끝난 8월25일 인사위원회를 개최하고 1차 해고 당시 문제가 됐던 소명절차를 ‘철저히’ 이행한 뒤 신씨에게 또다시 2020년 9월25일자로 해고한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2차 해고도 부당해고로 결론 났다. 해고를 통보받을 당시 신씨는 초등학교 1학년 자녀 양육을 위해 육아휴직 중이었다. 육아휴직 중 해고는 불법이다. 또다시 서울지노위가 사건을 맡았고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이번엔 중앙노동위원회까지 갔지만 회사는 부당해고 판정서를 받았다. 신씨는 해를 바꿔 지난해 6월1일 복직했다.

그렇지만 또다시 해고통보가 그를 기다렸다. 회사는 복직 사흘 뒤인 6월4일 신씨에게 이번에는 저성과로 징계를 받았음에도 PIP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았다며 해고를 통보했다. 회사는 이 사건을 다툰 서울지노위에서 “2차 해고 당시와 같은 사유로 절차적 하자만 치유했다”며 “징계사유에 따른 징계해고가 아니라 통상해고라 소명절차가 필요 없고, 설사 소명절차가 필요하다고 해도 이미 2차 해고 당시 소명절차를 밟았다”는 취지로 정당성을 주장했다. 서울지노위는 이번에는 최초로 회사쪽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중노위는 달랐다. 중노위는 “통상해고라고 해도 징계사유가 겹쳐 있다면 징계해고에 따른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2차 해고는 부당해고로 인정돼 해고가 무효가 돼 이번 해고(3차 해고)는 새 처분으로 봐야 하므로 소명절차를 부여하지 않은 것은 중대한 하자”라고 판정했다.

저성과 해고 말고 새 해고사유 찾은 회사
“노동위가 빨간줄 그으며 해고방법 가르친 셈”

주목할 점은 3차 해고를 다툰 초심이 해고를 정당하다고 봤다는 것이다. 중노위도 절차를 문제 삼았을 뿐 해고 사유는 인정했다. 1차 해고 당시 저성과에 따른 해고가 부당하다고 본 판정과 다르다. 결국 저성과를 근거로 한 징계를 먼저 내리고, 징계와 PIP 불성실 이행을 묶어 새로운 해고사유를 만들어 낸 회사의 전략이 노동위에서 먹힌 것이다. 회사도 이 점을 인지하고 올해 3월1일 복직한 신씨를 대상으로 같은달 10일 인사위원회 개최와 소명절차를 밟은 뒤 3월17일 네 번째 해고를 ‘결행’했다.

신씨는 “다섯 차례에 걸친 쟁송 과정에서 사실상 노동위가 회사를 교육시킨 셈”이라며 “일시적 저성과를 이유로 해고를 강행하려는 회사를 처벌하는 조항은 없고 노동위가 나서서 어떻게 해고해야 하는지 빨간줄 그어 가며 짚어 주는 나라가 어딨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회사는 왜 신씨를 이렇게까지 반복 해고했을까. 뜻밖에도 실마리는 1차 해고 당시에 있다. 신씨가 1차 해고를 당한 2020년 1월13일은 시그니파이코리아노조의 위원장 선거 첫날이었다. 신씨는 2016년 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초대 위원장으로 재임했고, 현업에 복귀했다가 3대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상태였다. 신씨는 “해고 무렵 탕비실에서 만난 ㅈ이사가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취지로 말했다”며 “노조 선거 출마를 이유로 해고한 것으로 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시그니파이코리아는 신씨 해고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서면으로 “지난해 서울지노위를 거쳐 중노위 판단에 이르기까지 해고의 정당성이 인정된 사건이며 당사자가 승복하지 않아서 구제신청을 접수한 건”이라며 “새 심의(4차 해고 심의)가 있기 전까지 일방적 입장을 언론을 통해 주장하는 것은 법적 다툼 소지가 있다”고 밝히며 구체적 답변을 거부했다. ㅈ이사는 “해고사유가 정당하다는 점은 줄곧 인정받았다”고 강조했다.

이재 기자 jael@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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