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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파업 종료 뒤 한 달여 만의 정리해고, 무효로 본 판결 등록일 2023.04.14 16:50
글쓴이 한길 조회 211
대상판결: 서울서부지방법원 2022. 12. 22. 선고 2021가합34179 판결

1. 사건의 개요

피고는 거대 다국적 의약품 유통회사와 같은 그룹에 속해 있는 관계사로, 모기업의 고객사인 제약회사의 소비자(의료진 및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고객지원 업무를 대행하는 서비스 사업을 수행하는 회사다. 피고는 ‘마케팅 사업부’와 ‘PC(Patient Care) 사업부’로 나눠 회사를 운영했고, 원고들은 이중 PC사업부에 소속돼 의료진 및 환자를 대상으로 의약품의 사용방법 및 건강문제 등에 대한 질의에 전문적으로 대응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피고 회사 내에 2019년 3월18일자로 노동조합이 설립됐고, PC사업부 소속 직원들이 해당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됐다. 노동조합은 2020년 5월21일 구조조정 실시 및 정리해고 등과 관련해 노동조합의 동의 또는 합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이른바 고용안정협약을 포함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 후 2021년도 임금교섭을 시작했으나 양측의 견해 차이로 결국 결렬됐다. 이에 노동조합원들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2020년 10월30일부터 같은해 11월13일까지 약 2주간 파업을 진행했다.

파업으로 인한 영업상 차질이 발생해 일부 고객사들이 문제제기와 손해배상 및 계약해지 등을 요구했다. 이에 피고 회사는 파업이 종료된 지 한 달여 만인 2020년 12월22일 고객사들의 신뢰훼손으로 인해 더 이상 PC사업을 존속할 수 없어 사업부 전체를 폐지하고, 사업부 소속 전원을 대상으로 2021년 3월31일자로 정리해고를 실시하겠다는 취지의 내용을 통보했다.

피고는 통보에 따라 단계별 휴직 및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잔존 고객사들의 계약연장 요구 등을 모두 거절한 채 사업부 폐지를 확정했다. 노동조합은 단체협약에 따라 합의 절차를 진행하고자 했으나, 몇 차례 만남 이후 제대로 된 협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피고는 최초에 예고한 날짜인 2021년 3월31일자로 원고들 전원을 정리해고했다. 이에 원고들은 이 사건 정리해고가 근로기준법 24조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으므로 무효라는 취지로,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2. 이 사건의 쟁점

이 사건 정리해고는 전원 노동조합원들만을 대상으로, 파업이 종료된 지 한 달여 만에 곧바로 결정·진행됐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피고는 그 전까지 두 가지 사업부 중 오히려 ‘PC사업부’의 영업이익으로 타 사업부의 적자를 보전하고 있었고, PC사업부는 줄곧 흑자를 기록하다가 파업 이후 하반기에 이르러 단 1개년도만 적자가 발생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파업 직후 고객사들의 계약해지 요구 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계약유지를 원하는 고객사 역시 잔존하고 있었던 시점에서, 피고측이 주장하는 상황만으로 사업부 전원을 해고해야 할 정도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존재하는지 문제가 됐다. 더불어 이를 판단하기 위한 사정으로, 피고가 주장하는 PC사업부의 2020년 손실 규모에 과다계상된 부분이 없는지 역시 주된 쟁점이 됐다.

다음으로 피고가 비록 정리해고 실시에 앞서 고객사와의 계약종료에 따른 단계별 유급휴직과 희망퇴직을 선행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존 사례와 달리 전환배치를 전혀 실시하지 않은 채 퇴직만을 선택지에 놓았을 뿐 아니라, 희망퇴직 보상 수준 역시 본사 및 관련 업계의 기준에 미달하는 수준이었다. 최종적으로 노동조합에서 사업 정상화 단계까지 무급휴직을 감수하겠다는 취지의 의사를 전달하고 추가 협의 절차를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최초로 예고한 해고를 강행한 피고측이 해고 회피 노력을 다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지 문제가 됐다.

그 외에도 단체협약을 통해 사업부 폐지 등의 구조조정을 실시하기 전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고, 정리해고와 관련된 사항을 합의한다는 취지의 이른바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했음에도, 그와 같은 노동조합의 동의 내지 합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 사건 정리해고가 유효하다고 볼 수 있는지 쟁점이 됐다. 이에 대해 피고는 단체협약을 체결했을 당시와 달리 사업 전체의 기반이 상실되는 등 현저한 사정변경이 있었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은 정리해고 대상자 및 절차 등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지 않고 전원 고용유지만을 관철하려고 했으므로, 합의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3.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비록 피고의 주장과 같이 파업 이후 PC사업부의 매출이 대폭 감소하고 계약이 해지되는 등 사업부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사정을 인정하면서도, 상술한 바와 같은 사정들(① PC사업부는 수년간 영업흑자를 기록했고,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면 2020년 영업손실 규모 역시 미미하다는 점 ② 경영악화가 단 1회의 파업으로 인한 고객의 이탈로 인한 것이며 앞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③ 파업 종료일로부터 한 달 남짓 지난 시점에 바로 사업부의 폐지를 결정한 점 ④ PC사업의 특성상 일부 프로그램 계약만을 유지하더라도 과다한 운영비용이 발생할 여지가 크지 않고 원고들이 정상화될 때까지 무급휴직을 감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점 등)에 비춰 봤을 때 정리해고를 단행할 만한 긴박한 경영상 위기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고, 일부 서비스를 유지하면서 사업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충분히 실시하지 아니한 이상 해고 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더불어 위와 같이 근로기준법 24조가 정한 두 요건을 충족했다고 볼 수 없는 이상, 나머지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와 관련해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 사건 해고는 정당한 이유가 없어 무효라고 봤다.

4. 대상판결의 의미

대상판결은 현재 시점에서 일시적인 사업 유지의 어려움이 예상되는 경우에도, 현재까지 사업이 어떻게 운영돼 왔는지, 그리고 사업이 어떻게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지 등 그 과정과 해고 결정 경위에 비춰 보았을 때, 사측이 주장하는 경영상 위기가 기술 및 경제 등의 구조적이거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이상, 만연히 일시적 경영 위기가 향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봐 곧바로 정리해고를 단행할 만큼의 긴박한 경영상 필요를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과거 대법원은 2012년 판결을 통하여 정리해고를 위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반드시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경우에도 인정될 수 있다고 해 그 인정 범위를 확대한 바 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정리해고를 위한 장래의 위험이 무한정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사정을 통해 경영위기가 발생할 것이 확실하게 예정되는 경우로 한정돼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줬다고 할 것이다.

또한 대상판결은 단순히 회사의 회계 실적이 적자 상태에 있다고 해 이를 곧바로 경영상 위기로 본 것이 아니라, 손실 내역 중에 과다하게 계상돼 있는 부분이 있는지, 또는 예정된 채무의 발생 원인이 영업 상황과 무관한 것인지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영업이익 및 손실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실질적인 경영상 필요를 판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고 할 것이다.

해고 회피 노력 여하와 관련해서도 대상판결은 형식적인 희망퇴직 실시 등만으로 정리해고 회피 노력을 다했다고 볼 수 없고, 노동조합이 무급휴직안을 제시했다는 점 등의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해 요건 충족 여부를 판단했다.

위와 같은 대상판결의 선고가 나온 뒤 피고측은 항소를 제기했다. 향후 긴박한 경영상 필요 및 해고 회피 노력과 관련해 다시 한번 2심 법원의 구체적인 판단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2심 법원에서도 동일한 취지의 판단을 기대하나, 만일 다른 판단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정리해고는 상술한 바와 같이 명시적인 고용안정협약에도 노동조합의 동의 및 합의 없이 이뤄진 것으로서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있으므로, 최종적으로 원고들의 승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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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매일노동뉴스 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