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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근로복지공단의 ‘형식적’ 소음성 난청 기준, 이대로 괜찮나 등록일 2023.04.13 16:01
글쓴이 한길 조회 208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20구단79175 장해급여부지급처분취소

소음노출이 심한 근로현장에서 근무하다가 소음성 난청을 입은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을 해 준다. 보통 근로복지공단에 재해자가 업무상 질병임을 주장해 각종 입증서류를 내면, 공단이 업무상 질병으로 승인을 해 준다. 그런데 공단이 계속해서 승인을 해 주지 않는 경우, 법원에 공단의 불승인을 취소해 달라는 취지의 행정소송을 내게 된다.

소음성 난청 사건의 쟁점

난청의 경우 크게 문제되는 쟁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재해자가 난청이 발생할 정도로 소음에 노출된 것이 맞는지, 즉 당시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정도가 문제된다. 공단은 그간 85데시벨 이상에 노출되지 않으면 이유불문 소음성 난청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두 번째는 재해자에게 난청을 가져올 만한 또다른 기저질환 혹은 노인성 난청 등이 있었는지 여부다.

여태까지 상당수의 난청소송은 두 번째의 문제, 즉 재해자의 기왕증(돌발성 난청, 중이염과 노인성 난청)이 주로 문제가 됐다. 공단은 60~70세 이상의 재해자인 경우 노인성 난청이 혼재돼 있고, “노인성 난청과 소음성 난청이 혼재돼 있을 경우 노인성 난청이 75%를 차지한다”는 의학교과서의 한 문구를 들어 줄곧 소음성 난청 인정을 거부해 왔다. 그러다가 소송해서 계속 패소하자 지침을 바꿔 노인성 난청이 혼재돼 있더라도 소음노출력이 상당하다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해 산재급여를 지급하는 쪽으로 지침을 바꿨다.

위와 같이 공단 지침의 변화로 소송 전에 이미 공단이 소음성 난청을 인정해 주는 경우가 많다. 현재 상당수의 난청소송은 재해자가 공단이 정한 85데시벨의 소음에 노출되지 않은 경우에도 소음성 난청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 여부(즉 위 난청소송의 첫 번째 문제)로 바뀌었다.

반드시 85데시벨 이상 소음에 노출돼야 산재 인정?

최근에 필자가 진행해 원고승소를 받아 낸 2020구단79175 사건의 경우도 위와 같이 시행령에 규정된 85데시벨에 현저히 미달(75데시벨 부근)하는 소음에 노출된 재해자의 소음성 난청 사건이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재해자(원고)와 공단 사이에 오고 갔던 서류를 살펴보니, 이미 재해자에게 난청 검사를 실시한 (공단이 지정한) 특진의들은 모두 원고의 난청이 소음성 난청이라고 하고 있었고, 심지어 공단 자문의 또한 같은 견해를 취하고 있었다. 또한 원고의 나이는 노인성 난청이 발병한다고 보기 어려운 만 57세였으며, 다른 이비인후과 기저질환도 확인되지 않는 상태였다.

관련 전문가들이 모두 원고의 난청이 소음성 난청이라고 말하고 있었는데도, 공단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는 ‘85데시벨의 소음에 3년간 노출됐다는 객관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소음성 난청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보통 업무상 질병 관련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재해자를 대리하는 변호사 입장에서도 공단 결론의 부당성에 대해 강한 확신이 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공단이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행정편의주의적인 부당한 판단을 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소송을 이기기 위해 어떤 주장을 하고 어떤 증거를 내야 할까. ‘저강도 장기간 노출’인 사안은 맞았지만 일단 승률을 높이기 위해서 변호사는 이런저런 주장을 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맨 처음엔 소음측정방법 등의 오류를 지적하며, 원고가 85데시벨 이상의 소음에 노출됐을 가능성도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를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 기존에 이와 비슷한 쟁점으로 진행된 난청사건을 보면, 소송대리인이 주로 ‘85데시벨’이상의 소음에 노출됐다는 것에 중점을 맞추곤 했는데 입증자료 부족으로 빈번히 패소했다. 차라리 85데시벨 이상의 소음에 노출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는 힘을 빼고, 85데시벨 이하에도 난청이 올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자는 것으로 소송전략을 바꿨다.

법원 감정의도 인정한 ‘저강도 소음’에 따른 난청

소음성 난청과 관련한 행정소송의 경우, 재해자의 질병이 업무에 기인했다는 점을 주로 법원 감정의(법원이 지정한 의사)에게 질의해(진료기록감정신청)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바탕으로 입증하게 된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를 감정의로 선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단이 반대의견을 내기 때문에, 주로 이비인후과 의사에게 ‘당해 재해자가 소음노출로 난청을 입은 것이 맞는지’라는 질문을 하게 되고, 이에 대한 회신을 원고 주장의 입증자료로 쓰게 된다.

그런데 이번 사건과 관련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위 진료기록감정신청에서 가장 큰 난관이 있었다. 의사마다 소견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었다. 기존 비슷한 쟁점의 사건에서는 당해 감정의가 ‘75데시벨의 소음노출환경에서는 직력이 20년이 넘어도 소음성 난청이 오기 매우 힘들다’라고 소견해 준 적이 있다. 비슷한 쟁점의 또다른 감정의는 ‘51.6~82.3데시벨’에서도 소음성 난청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하는 등 감정의마다 의견이 중구난방이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마다 전공, 연구결과 습득 등의 정도에 따른 차이로 보인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도 마냥 감정의를 잘 만나기만을 기다리며 진료기록감정신청을 하기엔 패소위험이 있어, 감정의가 반박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고도의 신빙성 있는 의학정보를 찾아야만 했다. 한국의 소음성 난청과 관련된 연구자료는 모두 85데시벨 이상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위 소송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어서 난감하던 차에, 혹시 산업안전이 발달된 해외국가에서 시행된 연구결과에선 저강도 소음노출과 관련된 논문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당시 의학도서관에서 근무하던 지인을 통해 저강도에도 소음성 난청이 발생할 수 있다는 취지의 해외연구자료가 있다면 확보해 달라고 했다. 감사하게도 지인이 3~4건의 논문, 즉 70데시벨이하의 소음 노출에도 많게는 40데시벨의 청력손실이 올 수 있다는 취지의 논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연구논문이 실린 학술지의 권위도 상당해서, 감정의가 함부로 ‘이 논문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답변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감정의가 채택돼 약 4개월을 손꼽아 기다린 끝에 ‘원고의 난청은 소음노출과 관련성이 있다, 저강도의 소음에서도 노출시간 및 기간에 따라 소음성 난청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는 감정회신을 받아볼 수 있었다. 승소를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형식적 시행령 규정, 언제까지 고집할 건가

이처럼 감정의가 명확하게 재해자의 업무상 질병을 인정하는 취지의 소견을 해 주면, 공단측은 패소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원고 승소취지의 조정권고를 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게 된다. 위 소송도 결국 원고에게 산재급여를 지급하고, 원고가 소취하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변호사인 나에게는 또 하나의 승소사건이고, 게다가 명확한 감정소견을 받아낼 수 있었기에 의미있었고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그러나 재해자는 작업환경도 열악한 데서 일한 것도 억울하고, 의사들이 모두 ‘소음성 난청’이라고 써 준 소견서도 있는데도 공단이 산재승인을 거부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상처받은 마음으로 지냈을까. 생각해 보니 마냥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이 사건은 승소했지만 공단의 형식적인 업무처리 관행으로 몇 년간 소송 중이거나, 아니면 소송도 포기하고 업무로 상한 몸을 이끌고 살아야 하는 수많은 재해자들이 존재할 것이다. 공단이 주장하는 구체적인 인정요건(85데시벨의 소음에 3년 이상 노출됐을 것)들은 대부분 시행령에 규정된 것들이다. 이러한 시행령은 업무상 질병 인정을 위한 하나의 예시규정에 불과하다는 명확한 판례의 태도가 있음에도 공단이 위와 같이 형식적으로만 산재인정을 해 주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공단도 근본적으로는 일종의 ‘보험사’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부지급사유를 만들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공단의 설립목적과 취지가 일반 민간보험사와 다르고 근본적으로 그들은 ‘주식회사’가 아닌 ‘공단’이라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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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매일노동뉴스 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