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말

HOME > 정보센터 > 법령 및 판례

제목 노조의 복지시설 운영을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없어 등록일 2023.04.24 17:07
글쓴이 한길 조회 214
대상판결 : 부산고등법원 2021. 5. 12. 선고 2018나53934(건물명도) 판결

1. 사건의 배경 : 자주적 단체교섭 침해하는 단체협약 시정지시 행정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노동조합의 집회나 쟁의행위에 대해 적극적인 형사처벌로 대응하고, 기업별 노조체계에서 노동조합 운영비나 전임자 임금을 사용자가 제공하는 단체협약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통해 무력화하려 하는 등 노동조합 활동에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해 2010년 7월1일부터 시행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전임자의 임금지급을 금지하고(24조2항)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초과해 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했다. 단체협약 시정명령 제도는 1979년 12월12일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 세력이 쿠데타에 저항하는 광주시민을 학살한 민주항쟁이 일어났던 1980년 비상계엄하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통제하기 위해서 만든 “노동조합 운영지침”이 그대로 노조법에 들어온 것으로, 사법부가 판단해야 할 협약의 위법 여부를 행정기관이 판단해 삼권분립의 헌법원리에 어긋나고,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자주적인 단체교섭과 협약자치권을 침해해 위헌 소지가 크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김선수, “20대 국회는 단협 시정명령 제도부터 폐지해야”, 매일노동뉴스, 2016년 12월20일자)

그래서 노동조합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위와 같은 단체협약에 대한 시정명령을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탄압으로 받아들이고 단체협약 시정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시기 대법원은 이러한 단체협약 시정명령 취소 사건에 관해 잇달아 주기적이나 고정적으로 이뤄지는 운영비 원조행위는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잃게 할 위험성을 지는 것으로,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요구 내지 투쟁으로 얻어진 결과라 하더라도 노조법 81조4호의 부당노동행위로 해석된다고 하고(대법원 2016. 1. 28. 선고 2012두12457 판결), 더 나아가 노조법 81조는 강행규정으로 이에 위반된 단체협약은 무효라고 판시했다(대법원 2016. 1. 28. 선고 2013다72046 판결). 하지만 사용자의 노동조합에 대한 운영비 원조에 관한 사항은 대등한 지위에 있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의해 정하는 것이 노동 3권을 보장하는 취지에 가장 부합한다. 어용노조와 같이 노동조합의 자주성이 저해될 위험성이 있는 경우가 아닌데도, 운영비 원조를 획일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노동조합 활동이 위축되거나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우호적으로 협력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대등한 지위에서 운영비 원조를 협의할 수 없게 해 실질적인 노사자치를 구현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금속노조가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는 노동조합 운영비원조금지 조항이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저해하거나 저해할 위험이 현저하지 않은 운영비 원조행위까지 금지하는 것은 헌법 37조의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하면서(2018. 5. 31. 선고 2012헌바90 결정), 국회에서 2019년 12월31일까지 개선입법을 하지 않으면 해당 조항은 효력을 상실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이에 따라 2020년 6월9일 개정된 노조법 81조는 “그 밖에 이에 준하여 노동조합의 자주적 운영 또는 활동을 침해할 위험이 없는 범위에서의 운영비 원조행위는 예외로 한다”는 규정을 신설하고 운영비 원조의 목적과 경위, 횟수와 기간, 금액과 원조방법, 노동조합의 총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 관리방법 및 사용처 등을 고려해 자주적 운영 또는 활동을 침해할 위험을 판단하도록 했다.

2. 사건과 소송의 전개

이 사건 노사는 1989년부터 사용자가 복지공제조합 시설을 마련하고 조합이 운영하도록 한다는 단체협약을 체결해 노동조합이 이를 매점과 분식점에 임대해 그 임대료 수입으로 명절과 노동절 선물비, 결혼 축의금, 조의금, 퇴직전별금 등으로 사용해 왔다. 2001년과 2002년 단체협약에서는 근로복지기본법에 따라 당기순이익의 5%와 자판기 수익금을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적치하기로 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정기조에 따라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2012년 6월20일 이 사건 노사에 임대료 수입을 사용자의 어떠한 개입도 없이 노동조합이 사용하게 하는 것은 운영비 지원에 해당한다며 노사 동수의 관리협의체를 통해 관리하도록 시정지시를 했다.

이에 따라 2012년 7월 노사는 사내근로복지기금 관리협의체를 구성해 복지공제조합 시설과 자판기에서 나오는 수입을 재원으로 사내근로복지기금을 관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용자가 근로복지기금 설립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2016년 1월 위와 같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단체협약 규정이 노조법 81조4호의 강행법규 위반으로 무효이므로 복지공제조합 시설 반환을 요구했는데, 노동조합이 이를 거부하자 사용자는 복지공제조합 시설 반환과 함께 10년치 복지공제시설 수익금 13억원 상당을 부당이득으로 청구했다.

3. 이 사건의 쟁점과 각자의 주장

이 사건은 사실관계와 법리적인 두 가지 쟁점이 있었다. 노동조합은 이 사건 복지공제조합 시설 임대수입금의 80% 이상을 명절과 노동절 선물비나 경조사비 등으로 사용했으나, 회계에 미숙했던 노동조합은 이를 노동조합 운영비 항목으로 회계처리하고 있었다. 사용처의 실질을 따져 이를 운영비 원조 금지의 예외인 후생복지자금으로 볼 것인지, 회계항목대로 노동조합 운영비로 볼 것인지에 대한 쟁점이 있었다. 사용자측은 노동절 선물비는 노동절 행사비용이니 노동조합 운영비 지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리적 쟁점은 사용자 주장대로 운영비 원조라 하더라도 노동조합이 투쟁과 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으로 체결한 것을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침해할 위험성이 있다고 봐야 하는지다. 2018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있기 전에 2016년 대법원은 주기적·고정적 운영비 원조는 노동조합이 투쟁을 통해 얻어 낸 것이라 해도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저해할 위험성이 있다며 강행규정인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해 무효라고 판결하고 있었다.

4. 1심 판결과 대상판결의 차이

2018년 5월17일 선고된 1심은 2016년 대법원 판결의 법리를 그대로 인용해 복지공제시설 수입을 조합원 선물비 등 조합원 후생복지 용도로 사용했다 하더라도, 사용자의 간섭 없이 자체적으로 그 용도를 결정할 수 있었던 이상 조합운영비 원조 성격을 가지고, 주기적·고정적 임대료 수입을 노동조합 운영비로 원조하는 단체협약은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저해할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강행규정인 부당노동행위 금지 위반으로 무효라고 하면서, 다만 위 대법원 판결에 따른 건물인도 통지를 받기 전에는 선의의 점유자였다는 이유로 부당이득 청구는 일부만 인용했다.

지난 5월12일 선고된 2심인 이 사건 대상판결은 단체협약에 ‘복지공제조합 시설’이라는 문언에 의하면 후생자금 명목으로 제공한 경위를 알 수 있고, 그 수익을 후생자금으로 사용한 내역이 80%를 넘으며, 사용자 스스로 노동조합의 강력한 투쟁력을 바탕으로 복지공제조합 시설 제공을 요구하여 부득이 이를 수용했다는 주장 자체로 사용자의 복지공제시설 제공을 통한 노동조합에 대한 지배·개입이 양립하기 어렵다는 등의 근거로 이 사건 복지공제시설 제공은 후생자금 지원에 해당해 운영비 원조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사용자의 복지공제시설 인도청구와 부당이득반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5. 대상판결의 평가와 의미

1심 판결 뒤 헌법재판소 결정(2012헌바90)과 이에 따른 2020년 6월9일 노조법 81조 개정이 있었는데 이 사건 대상판결은 법 개정 이후 노동조합에 대한 운영비 원조가 강행법규 위반으로 무효인지를 판단한 최초의 판결이다. 복지공제조합 시설의 사용 수익을 사용한 내역이냐, 후생자금이냐, 노동조합 운영비이냐의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그 전제로 운영비 원조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제하는 목적의 취지는 사용자가 운영비 원조를 기화로 노동조합을 지배하거나 그 운영을 개입하는 것을 배제함으로써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지, 노동조합으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서, 사용자가 노동조합에 일정한 자금을 지급한 행위가 운영비 원조에 의한 부동노동행위인지 아니면 여기서 제외되는 후생자금 기부행위에 해당하는지는 “그 지급 경위나 동기, 지급된 자금이 실제로 사용된 용도 등과 함께 위와 같은 법령의 취지 및 사용자 지배·개입의 실태나 위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이 사건 대상판결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지만, 대법원이 위 헌법재판소 결정과 개정 노조법상 운영비 원조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기본 법리를 바탕으로 노사가 대등하게 실질적 교섭을 통해 체결한 단체협약이라면 노동 3권 보호라는 헌법정신에 맞게 이를 존중하고, 박근혜 정부 시기에 정략적으로 추진된 노동조합 활동 무력화 행정을 바로잡는 법리적 판단을 내릴 것을 기대한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