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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퇴직때 설계도 빼돌려도 속수무책...영업비밀 탈취 35%가 무죄 등록일 2023.04.28 14:46
글쓴이 한길 조회 210
영업비밀 유출 비상

기업 `무형자산`이 90%인데 부족한 인식에 관리도 부실 
무죄율, 일반사건의 10배 달해 법정 가더라도 소송비용 출혈
아이디어 탈취 무방비 韓기업  창업 생존율 OECD 하위권
◆ 줄줄 새는 영업비밀 ◆



올해 한국 기업들은 국제 소송으로 큰 홍역을 앓았다. 2년 넘게 공방을 벌이다 지난 4월 양사 합의로 종결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 5년간 공방 끝에 합의로 마무리된 메디톡스·대웅제약 간 보톡스 원료 분쟁이 대표적이다. 이들 분쟁의 공통점은 모두 '영업비밀 침해' 관련 법적 공방이라는 점이다. 기업들의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영업비밀 분쟁은 국내 기업 간 다툼이더라도 국제 소송으로 번지고 이에 따라 소송 비용과 합의금 규모도 늘어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부담한 합의금 2조원은 영업비밀 침해소송 사상 최대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영업비밀 분쟁과 이로 인한 피해는 기업가치가 토지·건물 등 유형자산에서 무형자산으로 바뀌면서 더욱 증가하고 있다. 미국 특허평가 업체 오션토모에 따르면 미국 S&P 500 지수에 편입된 500개 대형 기업이 보유한 기업자산 중 무형자산은 비중이 90%에 달한다. 제조업이 중요했던 1975년에는 유형자산이 기업자산의 83%를 차지했지만 인터넷·소프트웨어·정보기술(IT) 등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자 무형자산 비중이 급증했다.

무형자산이란 영업권·지식재산권으로 분류되며, 브랜드 가치와 소비자데이터, 연구개발(R&D) 결과물, 소프트웨어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정작 기업들은 영업비밀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청이 2017~2019년 영업비밀 관련 형사사건 324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무죄율이 34.5%(112건)에 달했다. 대검찰청 검찰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형사사건 1심 무죄율은 0.81%다. 일반 형사사건에 비해 영업비밀 형사사건 무죄율이 42배 가까이 높다.


영업비밀 형사사건 무죄 사유 3건 중 1건(30.1%)은 '비밀관리성 불인정'이었다. 비밀관리성 불인정이란 영업비밀 유출로 피해를 본 기업이 영업비밀을 '비밀'로 관리했다는 정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연우 특허청 산업재산보호협력국장은 "영업비밀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이를 비밀로 인지하고 꾸준히 관리해야만 영업비밀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하지만 많은 기업과 소속 직원 상당수가 영업비밀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정 국장은 또 "실험 데이터, 세세한 도면, 고객관리 방법, 고객정보 등 보호받아야 하는 영업비밀은 상당히 많다"며 "하지만 기업이 스스로 관리하지 않으면 법으로도 영업비밀을 보호받을 수 없다. 직원들 역시 영업비밀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아무런 죄의식 없이 퇴사하면서 관련 정보를 가져간다"고 덧붙였다.

영업비밀 유출은 대기업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소기업일수록 영업비밀 관리에 무지한 사례가 많고, 이는 기업 생존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기준 한국 창업기업 5년 생존율은 29.2%로 프랑스(48.2%), 영국(43.6%), 이탈리아(41.8%)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41.7%에도 크게 못 미친다. 전문가들은 아이디어와 기술 유출 피해가 빈발해 중소·벤처기업의 성장사다리가 약화됐다고 지적한다. 이광형 KAIST 총장도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한국 벤처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기술 탈취'라고 꼬집었다.

영업비밀 유출은 기업뿐 아니라 유출한 본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종묘업체 C사의 연구소장 최현수 씨(가명)는 이 회사 거래처 중 하나인 중국의 한 종묘회사 대표에게 연락을 받았다. 대가를 지급할 테니 C사의 양배추 종자 원종을 일부 넘길 수 없겠냐는 제안이었다. 최씨는 중국 업체에 860만원을 받고 본인이 개발한 원종 45g을 전달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최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대로 철저한 영업비밀 보안으로 한 해 15조원을 벌어들이는 회사도 있다. 이탈리아 식품 기업 '페레로'는 영업비밀 유지를 위해 관계자가 아니면 출입을 통제하고, 직원들조차 휴대폰·녹음기 등을 반입할 수 없다. 누텔라는 경쟁사들이 헤이즐넛 잼을 뒤따라 출시하고 있지만 이 맛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출처- 매일경제 이새봄기자

2021년 8월 19일 A4면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