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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사조치를 악용한 위법행위 처벌에 여전히 소극적인 법원 등록일 2023.05.12 17:08
글쓴이 한길 조회 195
대상판결 : 대법원 2021. 7. 21 선고 2020도16858 판결

르노삼성자동차에서 발생했던 직장내 성희롱의 사실관계는 어쩌면 복잡한 문제는 아니었다. 회사가 성희롱 신고를 받았을 때 객관적인 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만 제대로 했다면 말이다. 8년여에 걸친 법적 공방은 사실 직장내 성희롱 행위 그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직장내 성희롱 신고 후 피해근로자에 대한 명예훼손과 회사에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던 피해근로자에게 징계·대기발령·업무재배치 등의 불리한 조치를 가한 회사의 책임에 관한 문제였다.

1. 사건의 개요

2012년부터 1년여에 걸친 성희롱 피해를 신고한 뒤 피해근로자는 사건조사담당 인사부서 직원들의 조사상 비밀누설과 명예훼손 발언, 회사 임원의 사직권유, 회사에 퍼진 피해근로자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을 겪었다. 하지만 회사는 어떠한 적극적인 보호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근로자가 허위 소문에 대응하기 위해 부서 직원에게 받은 진술서에 대해 회사는 작성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견책이라는 부당징계를 했다. 한편 피해자가 제기한 성희롱 소송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 동료근로자는 근태불량을 들어 정직이라는 부당징계를 받았다. 피해근로자가 근무한 부서의 통폐합 후 새 부서장은 피해자가 맡아 왔던 업무를 축소하기로 하고 피해자에게 비전문업무인 공통업무를 부여하는 업무분장을 했다. 또한 동료근로자가 부당징계 구제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출력하고 피해근로자가 함께 퇴근하는 길에 짐을 들어 준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회사는 동료근로자로 회사 서류 무단 반출을 이유로 정보통신망법 위반 및 절도 혐의로, 피해근로자는 이를 도왔다는 이유를 들어 절도방조 혐의로 고소했다. 이를 기회로 피해근로자에게 직무정지 및 대기발령을 통지하고 대기발령 장소를 이탈하거나 다른 사무실 출입을 금하는 조치를 취했다.

2. 당해 사건에 이르게 된 경과와 쟁점

2013년 피해근로자는 성희롱 행위자에 대한 불법행위 책임과 피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회사의 배상책임을 제기했을 뿐 아니라 회사가 징계·대기발령·업무배치 등 피해근로자와 도움을 준 동료근로자에게 행한 불리한 조치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청구를 했다. 민사소송의 1심 법원은 성희롱 행위자의 불법행위를 인정했으나 회사의 배상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항소심과 대법원은 회사의 배상책임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상 사업주의 성희롱 예방 및 발생시 조치의무를 근거로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한편 1심 법원은 회사의 징계와 대기발령·업무재배치를 모두 불리한 조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봤던 것과 달리 항소심은 그 중 업무재배치는 불리한 조치로 봤고(서울고등법원 2015나2003264 판결), 나아가 대법원은 피해근로자에 대한 견책징계·대기발령도 불리한 조치에 해당된다고 봤다. 동료근로자에 대한 정직 징계는 직접 피해근로자에 대한 조치가 아니라서 곧바로 남녀고용평등법상 불리한 조치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도 결과적으로 도움을 준 동료근로자에 대한 부당한 제재가 피해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입혀 불법행위 책임이 발생된다고 원심을 파기환송했다(대법원 2016다202947 판결).

2018년 환송심에서 회사의 징계·대기발령·업무배치 모두 성희롱을 이유로 한 불리한 조치라고 판결(서울고등법원 2017나2076631 판결)된 뒤, 검찰은 민사 판결에서 확정된 사실관계에 기초해 피해근로자에 대한 견책 징계를 실행한 인사팀 부장 A 및 R&D본부 부소장(징계위원장) B, 비전문업무로 배치한 부서팀장 C와 이들에 대한 관리를 게을리한 회사 D를 남녀고용평등법상 불리한 조치 금지 위반으로 형사기소했다.

당해 형사사건에서 1심 법원은 피해근로자에 대한 부당징계에 가담한 A와 B, 대기발령 조치를 한 A 및 징계와 대기발령에 관리책임이 있는 회사 D에 대한 형사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비전문업무로 재배치한 C에 대해서는 무죄를 판결했다(수원지방법원 2018고단1046 판결). 항소심도 1심의 판결을 유지하고(수원지방법원 2020노816 판결) 대법원도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그런데 상식적인 일반인이라면 당해 형사사건의 결론에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성희롱 피해자의 고유업무를 축소하고 비전문업무를 비정상적으로 과도하게 배치하려던 업무배치 조치가 민사법원에서는 이미 성희롱을 이유로 한 불리한 조치로 확정됐는데,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해 형사법원은 불리한 조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3. 당해 판결의 한계

동일한 사실관계 인정을 두고 민사절차와 형사절차에서 다른 판단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당해 형사판결에서도 민사 대법원에서 밝힌 불리한 조치 여부의 판단기준을 그대로 설시했다. 그러나 고유업무 축소를 예정하고 비전문업무를 배치한 조치에 대해 민사 항소심과 대법원은 △피해근로자가 새로 부여받은 공통업무는 모두 비전문업무로 당장 할 일 없는 한직으로 피해근로자를 부서에서 소외시킨다는 점 △다른 직원들은 공통업무를 아예 맡지 않거나 통상 1~3개 정도였지만 피해근로자에게만 유독 5개를 맡긴 것이 이례적이라는 점 △피해근로자가 그동안 수행해 온 업무는 전문업무이고, 공학전공자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피해근로자는 성희롱 신고 전까지 최고등급인 SP등급을 받는 등 무리 없이 해당업무를 수행해왔다는 점을 들어 회사가 주장하는 피해근로자의 엔지니어링 경험부족은 합리적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봤다. 성희롱 신고를 이유로 한 불리한 조치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반면 당해 형사사건의 1심 법원은 피해근로자가 수행해 온 업무는 공학전공자만 할 수 있는 업무는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업무를 선행업무와 양산업무로 다시 세분화해 양산업무는 공학전공자만 수행해 왔다는 점 △새로 부여된 공통업무 중 품질관리 관련업무들, 특허관련 업무들을 실질적으로 하나의 업무로 묶을 수 있으니 비전문업무는 5개가 아니라 3개라고 보면 기형적인 업무분장이라 볼 수 없다는 점 △2013년 12월 대기발령 전까지 피해근로자가 기존 고유업무를 그대로 수행했다는 점을 들어 성희롱 관련 불리한 조치가 아니라고 봤다. 이는 불리한 조치에 대한 동일한 법적 기준을 사용했다고 하나 사실을 전혀 달리 적용한 것과 다르지 않다.

1심 법원은 부서장 C의 고유업무 축소를 예정한 업무배치로 대기발령 복귀시점인 2014년 4월부터 피해근로자의 비전문업무 비중이 80%로 이례적으로 높아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공소장에 명시되지 않은 사항이라 판단에서 제외했다. 2심 법원은 공소장 변경에도 불구하고 비전문업무 비중이 증가하는 것은 2014년 4월 예상되는 것에 불과하고 업무배치가 있었던 2013년 10월에는 기존 고유업무를 계속 수행했으므로 고유업무 비중이 더 높다는 이유를 들어 불리한 조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나 2013년 10월 당시 부서장 C의 업무배치는 ‘향후 고유업무의 축소를 전제로 한 조치’로서 처분행위 당시 곧바로 전문업무 비중이 축소되지 않더라도 향후 불리한 조치의 결과발생에 대한 인식이 이미 존재했다는 점, 실제 2014년 4월 이후 피해근로자의 업무에서 비전문업무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점에 비춰 보면 처분 당시 고유업무의 비중만을 고려하고 비전문업무 비중의 증가를 단지 장래에 예정된 것에 ‘불과’하다고 취급해 버린 항소심 판결의 이유는 부적절하다. 특히 해당 부서장 C는 피해근로자의 부당징계를 행한 징계위원 중 한 명으로 성희롱 피해를 인식하고 있었던 점에서 불리한 조치의 고의가 추단되는 점이 공소장에 기재돼 있었음에도 이를 제대로 고려하지도 않았다.

4. 당해 판결이 미칠 영향

당해 판결은 성희롱 피해근로자에게 직접적으로 가해진 징계처분을 불리한 조치 위반으로 인정하기는 했지만, 업무재배치 등 업무상 사유를 표면적 이유로 삼는 인사조치에 대해서는 사용자측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수용했다. 즉 업무상 인사조치의 경우 위법성이 성립되려면 직접적으로 피해근로자에 대한 불이익을 가할 의사를 드러내지 않은 한 업무상의 사유가 조금이라도 인정되면 불리한 조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는 피해근로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행하고자 할 때, 업무상 인사재량이라는 명목 뒤에 숨어 형사책임을 회피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당해 사건의 성희롱 행위가 발생된 이후 지난 2017년 남녀고용평등법은 파면·해고나 징계·정직·강등·승진제한 등의 부당한 인사조치, 성과평가 또는 상과금 차별, 교육훈련기회 제한이나 집단따돌림 등의 행위를 피해근로자에 대한 불리한 조치의 내용으로 구체적으로 열거해 금지하는 내용으로 개정됐다. 법문에 따르면 성희롱 피해근로자에 대한 ‘직무 미부여, 직무 재배치, 그 밖에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인사조치’도 불리한 처우로 금지하고 형사처벌의 법정형도 강화했다. 이러한 법개정 논의는 이 사건의 민사소송에서도 불리한 조치에 대한 대법원의 적극적인 해석을 이끌어내는 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리한 처우에 대한 사용자의 경각심을 높이고자 한 입법자의 의도에도, 당해 판결은 불리한 처우로 열거된 구체적인 행위들이라도 표면상 업무관련 사유를 제시하면 여전히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으리라는 그릇된 신호를 사용자에게 주게 될까 우려된다.

피해근로자는 8년의 소송이 그나마 자신을 불리한 조치로부터 지켜 주는 안정장치였다고 말했다. 당해 판결에 대해, 회사의 불리한 인사조치가 다시 시작될까 두렵다는 피해근로자의 답변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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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매일노동뉴스 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