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말

HOME > 정보센터 > 법령 및 판례

제목 기내 청소노동자 ‘탄압 잔혹사’ 대법원 “유죄” 등록일 2023.05.12 16:24
글쓴이 한길 조회 196

대한항공 자회사인 한국공항의 하청업체 대표가 노동자에게 연장근로수당을 미지급하고 여성을 차별해 재판에 넘겨져 유죄를 선고받은 사실이 대법원 판결로 드러났다. 대법원은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혐의를 무죄로 본 원심 판단이 잘못됐다는 취지로 파기환송 했다. 이 하청업체는 장시간 노동과 산재 은폐 등 각종 문제점이 드러나자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2018년 2월 현장실태를 점검하기도 했다.

 

2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이날 오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항공기 기내청소 용역업체 ‘EK맨파워’ 대표 김아무개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 발단은 2017년 12월께 대한항공 기내 청소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조명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공공운수노조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는 체불임금 개선과 근무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보름간 파업했다. 여객기 청소업무는 원청 ‘대한항공’에서 조업사인 ‘한국공항’으로, 다시 청소업무는 도급업체인 ‘EK맨파워’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로 이뤄졌다. EK맨파워 소속 청소노동자 380여명은 하루 130편의 기내청소를 담당했다.

 

그런데 사측은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수당을 삭감했다. 지부가 추산한 미지급 수당과 남녀차별 수당 등 체불임금 규모만 21억원에 달했다. ‘산재 은폐’ 의혹도 불거졌다. 2017년 7월께 청소노동자 6명이 기화소독제를 흡입하고 집단 실신했는데도 사측은 6개월이 넘도록 고용노동부에 산재 보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부는 2018년 1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회사를 노동부에 고발했다.

 

결국 김씨는 2018년 4월 노조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적용된 혐의는 근로기준법 위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노조법 위반이다. 먼저 김씨는 직원 125명의 연장근로수당과 미사용 연차수당 6천400만원을 2014년 4월부터 1년8개월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또 91명의 미사용 연차수당 1천600만원과 퇴직자 16명의 연장근로수당 540만원도 주지 않았다.

 

여성노동자 차별도 적발됐다. 김씨는 2014년 4월부터 3년6개월 동안 여성 청소노동자 124명의 정근수당을 지급하지 않아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았다. 나아가 노조에 지배·개입한 정황도 밝혀졌다. 검찰은 김씨가 2015년 5월께 별도의 총회 절차 없이 본사 콜센터 총괄운영자가 노조 대표로 선출될 수 있도록 했다고 봤다.

 

쟁점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해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는지였다. 김씨측이 재판에서 2주 이내 기간에 탄력근로제가 취업규칙에 도입됐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측 주장대로면 1주 평균 근로시간이 40시간을 초과하거나 특정 주의 근로시간이 48시간을 넘지 않는 한 하루 근로시간이 8시간을 초과하더라도 연장근로수당 지급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1심은 노동자들과 탄력근로제에 관해 별도 합의가 없었다며 연장근로수당 지급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취업규칙에도 관련 조항은 없다고 봤다. 하루 8시간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통상임금의 150%를 가산해야 한다는 취지다.

 

김씨측은 ‘법률 지식’이 부족해 지급의무가 없다고 착오했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재판부는 “개별 근로계약서 작성만으로 수당 미지급이 법령에 의해 허용돼 죄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오인했거나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근속수당 근로조건이 근로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은 부분도 유죄로 판단됐다. ‘동일가치 동일노동’ 취지의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혐의 역시 인정했다. 여성노동자가 기내 오물을 수거하며 정돈하는 작업의 노동강도가 남성노동자보다 낮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그런데 항소심에서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부분이 뒤집혔다. 근로계약서에 탄력적 근로에 관한 근로조건이 기재돼 있어 취업규칙으로 볼 수 있으므로 탄력근로제가 시행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근로계약서를 통해 장기간 탄력근로제를 적용했고, 연장근로수당 미지급에 관한 이의제기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고의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탄력근로제가 근로계약서에 기재됐더라도 개별 동의로 도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별도의 취업규칙이 존재해 근로계약서가 실질적인 취업규칙이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탄력근로제의 도입은 취업규칙으로 정해야 함은 근로기준법에 명확히 규정돼 있고, 탄력근로제 시행을 위해 필요한 단위기간 등이 제대로 기재돼 있지 않은 근로계약서는 형식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취업규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음이 명백하다”고 판시했다. 나머지 혐의는 원심을 유지했다.

 

이를 전제로 대법원은 유죄 부분을 포함한 전체를 파기했다. 김씨가 기소된 지 6년 만이다. 하지만 그사이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노조는 해산하고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당시 지부장인 A씨는 지난해 3월 정년 퇴임했다. A씨는 이날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코로나 확산이 심해지면서 무급휴직에 동의하지 않은 직원들 대부분은 정부지원금 50만원만 받으며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며 “고발을 거쳐 이제야 유죄가 선고된 것은 다행이지만, 결국 대부분 퇴사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출처:

매일노동뉴스(2023.04.28일자)


https://blog.naver.com/hanguilhrm/223100325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