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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릴 기회 놓친 원청 중대재해 뒤늦은 ‘첫 실형’ 등록일 2023.05.12 16:23
글쓴이 한길 조회 194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첫 ‘실형’ 선고가 나왔다. 기존보다 처벌 수위가 높아진 데에 의미가 있다고 법조계는 평가했다. 하지만 원청 대표가 세 차례나 안전조치의무 위반으로 처벌받는 등 지속적인 산재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인 데도 형량이 법정형 하한선에 그쳐 여전히 처벌이 미미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1부(강지웅 부장판사)는 26일 오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한국제강 대표이사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함께 기소된 한국제강 법인에는 벌금 1억원을 주문했다. 지난해 1월27일 법이 시행된 지 1년3개월 만이다.

 

하청업체 강백산업 대표 B씨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40시간을 선고받았다. A씨는 오른쪽 팔에 ‘안전제일’이라고 적힌 작업복을 입고 법정에 섰다. 담담하게 선고를 들었지만, 재판장이 도주 위험이 있다는 등 이유로 ‘법정구속’을 주문하자 급격히 표정이 굳었다. 검찰은 지난 3월24일 A씨에게 징역 2년을, 한국제강 법인에 벌금 1억5천만원을 각각 구형한 바 있다.

 

재판부는 “A씨의 죄책은 상당히 무거워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고, 한국제강에도 상응하는 사회적·경제적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범행을 인정한 점 △피해자에 일정 정도의 과실이 있는 점 △유족과 합의해 선처를 탄원한 점 △한국제강이 시정명령을 이행하고 과태료를 낸 점 △안전보건 평가기준을 마련한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삼았다.

 

주목할 부분은 ‘불리한 정상’이다. 재판부는 A씨가 다수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처벌 전력이 있는데도 또다시 산재 사망사고를 일으켰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실제 2007년께부터 한국제강 경영책임자 및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 재직한 A씨는 세 차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10년 6월 검찰청과 고용노동부 합동점검에서 안전조치의무 위반 사실이 적발돼 이듬해 벌금형이 선고됐다. 2020년 12월에도 같은 위반 사실이 드러났다. 노동청의 사고예방감독에서 안전조치의무 위반이 확인돼 이듬해 3월 또다시 벌금형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도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2021년 5월24일 한국제강 고철 야적장에서 화물차 기사가 화물차를 운전해 고철 하역을 하다가 앞에 있던 고철 검수 노동자를 들이받은 사고가 일어났다. 피해자는 한 시간 만에 골반 골절로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로 A씨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벌금 1천만원으로 형량이 깎여 올해 2월 확정됐다. 항소심은 화물차 기사와 피해자의 과실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당시 판결문을 보면 작업계획서가 미작성됐고, 별도의 작업지휘자나 유도자도 없었다. 피해자가 오히려 작업지휘자 역할을 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역운반기계에 접촉 위험이 있는데도 출입 금지 조치는 없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한국제강 사업장에서 수년간에 걸쳐 안전조치의무 위반 사실이 여러 차례 적발됐고 산재 사망사고까지 발생한 것은 종사자의 안전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A씨는 종전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로 형사재판을 받는 와중에 2022년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음에도 경영책임자로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지난해 3월16일 한국제강 야외작업장에서 방열판 보수작업 도중 크레인에서 떨어진 무게 1.2톤의 방열판에 맞아 목숨을 잃은 하청노동자가 작업했던 야외작업장.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재해조사의견서>

재판부 지적대로 사고는 다시 터졌다. 한국제강 하청노동자 C(사망 당시 65세)씨가 지난해 3월16일 오후 1시50분께 야외작업장에서 방열판 보수작업을 하던 중 크레인에서 떨어진 무게 1.2톤의 방열판에 맞아 숨진 것이다. 중량물 취급에 관한 작업계획서는 없었다. 방열판이 걸려 있는 섬유벨트도 낙후해 사용하중 표식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A씨측은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평가기준을 준비한 점을 정상참작 사유로 주장했다. 최종 평가기준 마련 이전에 중대재해가 발생해 준비기간이 부족했다는 취지다. 하지만 재판부는 “법 시행일까지 1년 유예기간이 있었고 유예기간에 사망사고가 발생해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과 이행에 관한 조치를 할 필요성이 다른 사업장에 비해 간절했다”며 A씨측 항변을 배척했다.

 

선고 직후 하청 대표 B씨가 언급한 내용도 이러한 부분을 뒷받침했다. B씨는 <매일노동뉴스>에 “한국제강 직원으로 일하다가 공장 완공 이후부터 소사장제 형태로 제강 일용보수작업을 도급받아 해왔다”며 “보호구와 안전장치는 있었지만, 굳어진 관행대로 작업계획서 없이 일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 3개월 만인 지난해 6월께 폐업했다. 항소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법조계는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형량은 아쉬워했다.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1호 판결에서 원청 대표가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돼 가벼운 처벌의 관행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우려가 있었다”며 “이번 판결에서는 실형이 선고돼 이러한 우려를 해소할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특히 ‘위헌 논란’도 이번 판결로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중대재해사고를 기업의 조직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한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는 견지에서 최근에 새로운 법률이 만들어졌다”며 입법취지를 명확히 밝혔다. 앞서 ‘1호 선고’인 온유파트너스 사건의 재판부 역시 같은 취지로 판단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 개념을 신설해 중하게 처벌함으로써 노동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목적이라는 것이다. 다만 권 변호사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만 적용됐던 때는 벌금 3천만원을 넘어선 적이 없다는 점에서 진전됐다”면서도 “벌금형 상한이 50억원이고 한국제강의 지난해 매출액이 8천3백억원인 점을 보면 법의 엄중함을 보여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특히 낮은 선고형량에는 검찰 낮은 구형량 때문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검찰은 A씨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중대재해 첫 판결인 ‘온유파트너스 사건’과 같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3월께 일선 검찰청에 배포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양형기준’에서 사망사고 범죄의 기본구간을 징역 2년6월~4년으로 정했다. 권 변호사는 “검찰의 낮은 구형은 법원의 낮은 양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한국제강의 ‘산재 다발’ 전력에 비해 형량이 낮다는 지적도 있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한국제강이 위험한 일터가 되기까지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도 사법부의 너그러운 처분으로 사실상 방치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에도 산업안전보건범죄가 반복된 경우 실형이 선고된 사례가 종종 있었다”며 “징역 1년 형량이 특별히 무거운 것은 아니다”고 해석했다.

 

노동계 반응도 비슷했다. 한국노총은 “국민 상식에 부합하는 선고가 이어지기를 촉구한다. 정부도 개악 시도를 중단하고 제대로 법이 작동할 수 있도록 대책을 수립하라”고 논평을 냈다. 민주노총은 “법원이 법 제정취지를 반영해 원청 경영책임자에 실형을 선고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면서도 “1호 판결에 이어 산업안전보건법보다 낮은 구형과 양형의 선례가 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오후 노동자 16명이 급성중독을 일으킨 두성산업 사건의 공판도 진행됐다. 창원지법 형사4단독(강희경 부장판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두성산업 대표이사 D씨 등에 대한 8차 공판을 진행했다. 세척제 납품업체 유성케미칼과 대흥알앤티 대표에 대한 피의자 심문과 대흥알앤티 노동자의 피해자 진술이 이뤄졌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건강 상태와 심정 등과 관련한 ‘양형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7월5일 검찰 구형이 이뤄질 전망이다. 이날 두성산업 측이 낸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여부도 결론 날 것으로 보인다.


출처:

매일노동뉴스(2023.04.27일자)


https://blog.naver.com/hanguilhrm/223100328432